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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이야기/ADHD 생활기

애플워치를 ADHD 보조 기기로 활용하는 7가지 방법

by 벨리너린 2020.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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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 6

스무살 때, 처음 인턴십 했던 IT 회사에서 스마트 워치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엔 스마트 워치의 심박수라던지, 쓰러졌을 때 응급 구조 SOS 기능이라던지 하는 건강 관련 기능이 젊은 사람보다는 중년 이상의 사람에게만 관련이 있는 건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ADHD를 새롭게 진단받았고, 사기 전엔 효과를 정말 반신반의 했지만 애플워치로부터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시작한 메틸페니데이트 약물 치료와의 시너지가 정말 좋다. 그럼 구체적으로 애플워치가 내 ADHD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이 블로그 포스트에 나온 웨어러블 기기와 모든 앱들은 직접 구매해서 사용한 것들이고, 내가 실효성을 느껴서 쓰는 이유 외에 어떤 광고도 없다.

 

1. 시간 개념 개선 

사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핸드폰을 시계 대용으로 가지고 다닌 세대이기 때문에 인생에서 손목시계를 차본 경험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애플 워치를 사용하고나서 깨달았다. ADHD인 주제에 핸드폰 말고는 시계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했던 것인지를... 시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ADHD의 주된 증상중 하나인데, 타인보다 시간을 훨씬 길게 혹은 짧게 인식하고, 이로 인해 엄청 잦은 지각을 하게 한다. (ADHD와 시간개념에 대한 포스팅은 나중에 따로 할 생각이다) 예전엔 시간이 궁금해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다른 스마트폰 알림에도 집중이 뺏기거나, 멀리에 있는 스마트폰까지 걸어가기 귀찮아서 지금 몇신지 파악을 못했는데, 바로 바로 시간 확인이 되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훨씬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타이머 기능이 내게 아주 유용했다. 요리를 하다가 타이머를 맞춰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예전엔 스마트폰 찾다가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스마트폰 찾고 타이머를 맞춰야하는데 다른 알림에 정신이 팔려서 불에 올려놓은 요리를 까맣게 잊어버린다던가 하는 일이 많았다. (RIP 나를 거쳐간 냄비들) 그런데 요리 하다가 바로바로 손목에다가 시리를 불러 "4분 타이머 맞춰줘"하면 시리가 알아서 맞춰주고 손목에 진동을 울려주니 훨씬 효과가 좋았다. 

 

2. 애플 워치에 최적화된 플래너 앱 Owaves

 

애플워치에 최적화된 플래너 앱 Owaves

나는 사실 이 Owaves라는 앱을 사용하고 싶어서 애플 워치를 산게 구매 이유의 5할은 되는 것 같다. 내가 많은 도움을 받은 해외 ADHD 유튜버가 이 앱을 사용하려고 애플 워치를 샀다는 말을 듣고 원래 망설이고 있던 마음을 구매쪽으로 확 땡겼다. 

 

사실 애플 워치를 구입하기 전에도 Owaves라는 앱을 아이폰에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스마트폰을 다른 곳에 던져두고 무음으로 해 뒀을 때 다음 일과 알림도 못보고 지나치고, 지금 무슨 일과를 해야하는 타이밍인지 보려고 스마트폰을 가지러가기 귀찮아서 효용이 좀 떨어졌었는데, 이제 애플 워치와 연동하니 일과가 바뀔 때 마다 손목 진동으로 알려주니 다음 일과로 옮겨가는게 훨씬 더 수월했다. 오른쪽에 있는 화면 사진에서 노란색으로 연필 아이콘이 나타난 부분이 Owaves 앱인데, 지금 블로그 포스팅 쓸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Owaves 앱이 ADHD인들에게 특히 도움이 되는 이유는 애플 워치 연동성 말고도 몇 가지가 있는데, 첫 째는 바로 시각적인 파이로 하루를 나타내는게 현실적인 계획 수립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ADHD인들이 시간관리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큰 부분이 바로 하루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고 과부하가 걸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쉽게 번아웃을 겪는 것인데, 그냥 할 일만 체크리스트로 나타내는 To-Do List 앱들보다 현실적으로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다. 초등학교 방학 계획표같은 파이에 일과를 집어넣다보면 아, 몇 가지는 오늘 하기엔 무리고 다른 날에 해야겠구나라는게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또 다른 장점은 다른 생산성 앱들과는 달리 Play와 Flow (계획 없이 보내는 시간) 타임 설정도 강조하는데, 정기적으로 건강한 도파민 활동을 하는게 선택이 아닌 필수인 ADHD인들에게 죄책감 없이 나 자신의 즐거움과 휴식을 위한 시간을 설정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3. 더 많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줌 

애플워치 운동 트래킹 기능

운동이 ADHD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이미 많이 밝혀진 바이다. ADHD인들은 신경정상인보다 전두엽 발달이 더딘데 운동이 전두엽에 자극을 줌은 물론이고, ADHD인들에게 꼭 필요한 도파민까지 일시적으로 분비시켜준다. 그러나 ADHD 증상 중 하나인 집행 능력 (executive function) 장애 때문에 운동하려고 몸을 일으키기가 어렵기도 하고, 운동 하려고 계획을 세워둬도 더 재밌는 즉각적인 도파민 보상 활동에 정신이 팔리기도 하고 (ex. 넷플릭스, 게임), 특히 코로나 시대에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스튜디오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외부 약속으로 나 자신을 운동하게 만들지 못하고 전적으로 자기 의지로 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애플 워치가 생긴 후 집에서 혼자 홈 트레이닝을 해도 심박수와 소모 칼로리 측정등을 알려주고, 하루 활동 목표인 액티비티 링을 채우는 성취감으로 훨씬 몸을 움직이는 보상이 늘어난 것 같다. 예전에는 집에서 혼자 운동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도 불분명해서 동기부여가 덜 됐는데, 얼마나 운동했는지 알아주는 녀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된다. (부작용으로는 피곤한데도 액티비티 링을 채우려고 크런치하고 스쿼트하고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거기다가 ADHD 특유의 과집중 상태로 몇 시간동안 먹고 마시고 화장실가는 것도 잊고 뭔가에 집중할 때가 있는데,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으면 애플 워치가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라고 진동으로 알려준다. 확실히 외부적인 잔소리가 늘어나는게 행동 교정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4. 심전도 측정 앱

심전도 측정 앱은 애플워치 6에서만 지원하는 기능이라고 알고있다. 심장 병력이 있는게 아닌 이상 심전도 측정 기능이 굳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ADHD 약물치료 초기에 심장 기능 확인하고 각성제 복용하면서 심박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확인하는데에 유용했다. 메틸페니데이트 (콘서타, 메디키넷, 리탈린 등) 계열 각성제 ADHD 치료제들은 아무래도 각성제이다 보니 심장에 무리가 가긴 하고, 독일에서는 이 약을 처방할 때 심전도 검사를 받아오라고 한다. 나는 심장병 가족력이 없어서 고위험군은 아니지만 용량이 올라가거나 다른 각성제와 복용할 때 부정맥 등의 심장 관련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의사가 복용하면서 적어도 1년에 한번은 심전도 검사를 받을 것을 추천했다. 그런 면에서 병원에 자주 가지 않고 복용하고 용량 증가할 때마다 심장 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보조 도구가 있는 것은 좋은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복약하고 30분 후 심박수가 30bpm정도 증가함을 측정했다. 

 

5. 스크린 중독 개선

이건 별로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인데, 애플 워치를 쓰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서 한두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서 SNS 타임라인을 계속 새로고침하는 것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알람을 스마트폰으로만 해두다 보니 알람 끄려고 스마트폰 들었다가 각종 메시지 알림을 보게되고, 그걸 보다보면 아침부터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 종일 스크린의 노예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누가 메시지를 보내진 않았나 핸드폰 확인하다가 또 SNS의 늪에 빠지게 되고. 

 

그러나 애플 워치를 사용하고 나서는 마침 아이폰 알람기능이 고장나서 애플 워치 알람으로 깨어나게 되었고, 애플 워치에도 간밤에 온 메시지 알림이 뜨긴 하지만 다른 SNS 앱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알림에 대한 궁금증은 바로바로 해소하고 SNS를 끝없이 스크롤링하지 않게 되었다. 애플 워치 사용 후 내 새로운 아침 루틴은 손목 진동과 소리로 깨어나서 애플워치 명상 앱으로 명상하고, 몸을 일으켜 커튼을 밝게 치는 것이다. 애플 워치로 메시지 알림도 바로바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알림이 왔나 궁금해서 핸드폰을 찾는 일도 줄어들었다.

 

6. 수면 습관 트래킹 및 개선 

 

Sleep Cycle 수면패턴 트래킹 앱

수면 역시 많은 ADHD인들이 고질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다. ADHD인들의 생체시간이 신경정상인보다 1.5시간 정도 뒤로 밀려나 있는것도 그렇고 (나같은 경우엔 무슨 짓을 해도 항상 정확하게 새벽 1시 반으로 취침시간이 돌아간다) 수면 질도 낮아서 오래 자도 개운하지가 못하다. 또 자야할 때 오히려 각성되는 부분도 있어서 졸려도 딴 짓을 하면서 수면 시간을 더 뒤로 미루는 경우도 많다. (많은 ADHD인들이 새벽 2시에 갑자기 쿠키를 굽거나 빨래를 갠 경험에 공감할 것이다.) 반대로 아침에 뇌가 깨어나는게 훨씬 느려서 아침에 머리가 맑긴 커녕 비몽사몽하며 오전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기 어렵다. 나 같은 경우엔 오히려 팟캐스트같은 것을 틀어놓고 어느정도 외부 자극을 뇌에 공급해야 더 빨리 잠들고, 그렇지 않을 경우 컬러풀한 난리 부르스를 추는 뇌내 극장 때문에 더 늦게 잠든다. 

애플 워치를 구입하고 수면 트래킹을 하면서 내가 남들보다 오래 자도 피곤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내가 기억하진 못하지만 중간에 자주 깨서 수면 효율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다. 분명 나는 9시간을 잤다고 생각했는데 수면 트래킹 앱은 내가 기억하진 못하지만 중간에 서너번이나 깨서 7시간반 밖에 자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Sleep Cycle이라는 수면 트래킹 앱을 쓰는데 이 앱에 늦어도 몇시까지 일어나야한다고 설정해 놓으면 그 전으로 30분 구간 내에 가장 수면이 얕을때 깨워준다. 그러면 잠에서 깨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개인적으로 애플 워치 알람이 잠에서 깨는데는 그냥 핸드폰 소리 알람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수면 질 트래킹으로 얕게 잠들었을 때 깨워주고, 쩌렁쩌렁한 소리에 의존하지 않고 진동으로 젠틀하게 깨워주기 때문에 아침부터 알람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훨씬 적은 것 같다. 나는 여태까지 알람 시계가 갑자기 시끄럽게 깨우는게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져서 (알람으로 갑자기 깨우는게 심혈관계에 안좋다는 연구도 있다) 알람을 안쓰고 몸이 충분히 잤다고 느낄 때까지 자고 자연스럽게 일어났었는데, 그러다보니 자꾸 늦게 일어나고 늦게 졸려서 늦게 자게 되었다. 겨울엔 특히 늦게 일어나면 해가 금방 져 정신 건강에 별로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수면 패턴을 좀 개선하고자 애플 워치로 평소보다는 약간 더 일찍 일어나려고 하고, 덕분에 밤에 더 빨리 졸려서 빨리 잠들게 되었다.

 

또한, 내가 iOS에서 설정해둔 베드타임이 지나면 애플 워치가 진동으로 잠들 준비를 할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그 후로는 알림도 일시 차단시키고 잠금 해제도 훨씬 귀찮게 만든다. 아무리 전자 기기가 나한테 이제 전자 기기 그만 사용하고 자러 가라고 잔소리해도 자러 갈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거지만, 역시 잔소리하는 외부 요인이 있는게 없는 것 보다는 훨씬 행동 교정에 도움이 된다.

 

7. 스마트홈 연동 사용

 

Tile Mate 제품 이미지

아직 다른 IoT 제품과 연동해서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이 부분 역시 ADHD 보조 기기로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다른 해외 ADHD 블로거가 Tile Mate라는 열쇠나 지갑, 노트북 등에 붙일 수 있는 물건 찾기 제품을 애플 워치에 연동해서 아주 잘 쓰고 있다고 한다. 물건 잃어버리는게 정기적인 이벤트인 ADHD인들에게 꽤 매력적인 것 같고, 나도 한번 써보고 싶어서 현재 위시리스트에 있는 제품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스마트홈 앱들이 애플 워치를 통해 원격으로 조명을 켜고 끄거나 집안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 아직은 다양한 스마트홈 센서랑 장치에 투자할 예산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항상 조명이나 난방을 끄고 나오는걸 깜빡하거나 심지어 가스레인지 끄는걸 잊는 ADHD인들의 통장 잔고와 안전에 굉장히 유용한 기술이 될 것 같다.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꼭 스마트홈 환경을 조성해서 애플 워치와 연동해서 사용해보고 싶다.


ADHD를 가지고 사는건 일종의 장애를 가지고 사는 일이다. 그건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안경의 도움을 받고,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휠체어의 도움을 받듯, ADHD와 같은 신경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도움의 필요를 인정하고 도움을 받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도움은 약물 치료가 될 수도 있고, 인지행동 치료가 될 수도 있고, 애플 워치같은 기기가 될 수도 있다. 웬만하면 내가 현재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모두 받는 것이 가장 좋다. 도움을 받는 데이 있어서 죄책감이라던가 내가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자괴감은 느낄 필요 없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나도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사실 애플 워치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 결정적으로 행동을 바꾸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난 이 부분에서 특히 약물 치료와 시너지 효과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약물 치료로 일으켜지지 않는 몸의 집행 능력을 조금이라도 개선 시키면서 애플 워치를 사용하면 애플 워치가 하는 잔소리에 몸을 움직일 확률이 훨씬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위에 있는 방법들 말고도 ADHD의 인지행동 교정 면에서 스마트 워치가 우리에게 더 큰 도움을 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것 같다. 앞으로도 ADHD인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디지털 솔루션들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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