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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이야기/ADHD 생활기

ADHD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

by 벨리너린 202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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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치료하고 증상을 조절한다면 ADHD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더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다

흔히들 ADHD를 치료하는 이유를 학업이나 업무 저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ADHD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ADHD를 치료받으면서 살아가고, 많은 정신과 주치의들도 집중력이 향상되느냐 저하되느냐를 주된 치료 목표로 삼는다. 또 누군가는 아예 ADHD는 말 안듣고 시끄러운 어린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지어낸 병명이며, 약물치료는 어른들이 억압적으로 자연스러운 어린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한다. 

 

그 뿐인가. 평생 어려움을 겪다가 성인기에 ADHD를 진단 받은 사람 역시 치료의 필요성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정신과 약물 치료에 평생 '의존'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기능하지 못하는 인간인가? 라는 자괴감도 든다. 내가 여태까지 해내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한 핑계는 아닐까 자기 검열도 한다. 

 

나는 나의 ADHD 치료를 통해서 더 좋은 점수를 받거나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재수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ADHD 진단과 치료 전에도 꽤 만족스럽게 이뤄낸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평생 공부 잘한 사람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석사 두 개를 끝마치고 나서야 ADHD 진단과 치료를 받기로 굳게 결심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많다. 이력서 상으로는 나는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남들은 곧 잘 해내는 일상이 너무나도 버거웠다. 하루 세끼 밥을 차려먹는 일, 주변 정리를 하는 일, 제때 잠들고 제때 일어나는 일... 이력서 상의 성취에 에너지를 쏟으면 쏟을수록 기본적인 일상은 무너졌고 건강 역시 또래보다 빠르게 무너져갔다. 일상이 무너질수록 외적인 성취를 해낼 자신감도 떨어졌다. 그리고 점점 내 건강을 연료로 태워 만들어간 성취라는 느낌이 들면서 힘들게 이뤄낸 성취조차 별로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뭐든지 독립적으로 혼자 잘 해낼 것 같은 아이였지만 난 정말 도움이 필요했다.

 

제목은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안되는 이유'라고 적어 놓았지만 사실 사람마다 받을 수 있는 치료의 범위가 다른건 사실이다. 정신과 갈 돈이나 시간이 없을 수도 있고 부작용 때문에 약물 치료를 지속하지 못할수도 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 글을 넓은 의미에서 '도움 받지 않고 방치하면 안되는 이유'로 생각하고 쓴다. '도움 받는 것'에는 정신과 약물치료 이외에도 인지 행동 치료, 마음챙김/ 명상, 스마트 기기, 유료 서비스 사용, 주변인의 도움, 그리고 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내 주위를 내 ADHD에 맞춰 재정리 하는 것 등이 넓게 포함된다. 

 

규칙적인 운동은 ADHD 전두엽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운동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1.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ADHD의 증상에는 주의력 결핍과 과잉 행동만이 있는게 아니다. 집행 능력 (executive function) 역시 떨어지고 수면 장애 역시 동반된다. '뭔가를 해야겠다-'라고 생각은 몇날 며칠을 하지만 결국 몸을 일으켜서 그 일을 끝내게 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남들보다 생체 시계가 늦게 미뤄져있다는 뜻이다. 수면 사이클 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간에 대한 인식 자체도 왜곡되어 있다. 규칙적인 생활, 식사, 운동, 수면이 건강에 좋은 건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ADHD 증상 자체가 몇시라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켜서 식사를 준비해서 먹고, 계획해서 운동하고, 제 시간에 잠이 와서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뜻이다. 덜 알려진 ADHD 증상 중엔 초집중도 있는데, 어떤 일에 과몰입되어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먹고 마시고 자는 것 조차 어려운 상태가 된다. 나는 이 초집중 증상에 기대 학업적 성취를 이뤘지만, 건강상 지속가능하지 못한 전략이었다. 

 

ADHD를 가진 성인이 그렇지 않은 성인보다 2형 당뇨를 앓을 확률이 2배 더 높다고 한다. 또한 거식증, 폭식증 등 섭식장애 유병률은 ADHD를 가진 사람에게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배 더 높다. 아직 그 이유에 대해선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ADHD를 가진 사람들이 음식을 통한 도파민을 추구하고, 음식에 대한 충동성을 제어하는 기능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그 뿐인가, 수면 부족이 신경계와 심혈관계에 얼마나 치명적인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ADHD인들은 전날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음에도 생계를 위해 알람을 끄고 출근을 하던가, 실제로 잠을 이기지 못해 회사에서 잘린다. ADHD의 치료는 기본적인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데에 직결되기 때문에 방치하면 안된다. 

 

ADHD 약물 치료를 시작한 이후 제 때 일어나서 충분한 각성 상태에 도달하고, 제 때 영양가 있는 식사를 챙겨먹고, 운동하고, 제 때 잠 잘 준비를 마치는게 훨씬 수월해졌다. 약물 치료 이외에도 애플워치를 통해 훨씬 규칙적이고 많이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고, 장보기 배달 앱을 통해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재료로 제때 밥을 챙겨먹는 것도 도움을 받고 있다. 취직을 하고 나면 주기적으로 전문 청소업체에 도움을 받을 계획이기도 하다. 사실 ADHD인 뿐만이 아니라 전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8시간 앉아서 노동을 하고도 자기 밥도 차려먹고 자기 집 청소도 하면서 살아가길 기대받은 역사는 길지 않다. 전 인류가 가족이나 공동체 구성원의 무상 노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러니 일종의 신경발달 장애인인 자신에게 혼자 모든걸 다 해내야 한다는 혹독한 기대를 하지 말고, 여력이 된다면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도움을 받자.

 

애플워치를 ADHD 보조 기기로 활용하는 7가지 방법

스무살 때, 처음 인턴십 했던 IT 회사에서 스마트 워치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엔 스마트 워치의 심박수라던지, 쓰러졌을 때 응급 구조 SOS 기능이라던지 하는 건강 관련 기능이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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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울증, 불안장애 등 다른 정신 질환에 취약해진다 

ADHD를 가진 사람의 80%는 평생 최소 1가지 이상의 다른 정신 질환을 겪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ADHD 진단을 받기 전 우울증, 불안장애 등 다른 진단을 떠돈다. 집행기능 상실, 기억력 저하 등의 ADHD 증상을 오진한 것일 수도 있고, 진짜 ADHD와 함께 다른 정신 질환을 겪은 것일수도 있다. ADHD인의 30%가 평생 1번 이상 우울증을 겪는다고 하고, 20%~30%가 불안 장애 역시 겪어본 바 있다. 이는 ADHD와 별개의 질환일수도 있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ADHD 증상때문에 생긴 질환일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ADHD를 가진 사람은 규칙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칫하면 우울의 하강나선에 빠지기 쉽다. 밤낮이 바뀌고, 대충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고, 주변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운동 부족 상태가 되면 우울증이 원래 없던 사람이라도 우울증 생기기 딱 좋은 조건이 형성된다. 평생 반복되는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혼난 경험으로 낮아진 자존감도 우울증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울증은 치사율이 꽤 높은 질환이고, 자살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삶의 질에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불안 장애 역시 ADHD 증상과 깊은 연관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매일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늦어서 헐레벌떡이고, 잦은 실수와 혼남으로 긴장도가 항상 올라가있다. 수면 부족, 운동 부족, 어지러운 주변 상태 모두 우울증과 비슷하게 불안 장애 역시 하강 나선에 빠지게 한다. 

 

나 역시 ADHD인의 뇌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두 질환 모두 겪은 적이 있다. ADHD 진단을 받기 몇 년 전 불안 장애로 상담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더더욱 햇빛이 나지 않는 유럽 북부에서 살면서 우울증도 두어번 만나본 바 있다. ADHD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으면서 ADHD 증상 조절만으로도 불안 장애와 우울증이 좀 나아지기도 하지만, 더 좋은 것은 ADHD 치료를 목적으로 정기적으로 정신과 방문을 하면서 다른 정신 질환도 조기에 발견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ADHD를 가진 사람이 다른 정신 질환 유병률이 더 높다고 해서 그 정신 질환에 더 많이 패배할것이라는 뜻은 아니니 너무 상심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몇년 전 불안 장애를 앓았지만 상담 치료를 받은 후 이젠 웬만한 사람보다 불안을 조절하는 법을 더 잘 알게 되었다. ADHD를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도움을 받고, 환경을 개선해 나갈수록 나 자신의 다른 정신 질환은 물론이고, 타인의 마음 건강까지 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게 되지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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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전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기 쉽다 

좋던 싫던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이상 돈은 굉장히 중요한 삶의 구성요소이다. 양질의 주거, 건강, 교육 등 삶의 많은 중요한 부분이 돈이 없으면 누리기 어려우니까 말이다. 하지만 ADHD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돈을 버는 것에도, 모으는 것에도 많은 제약이 생긴다. 예를 들어서, 난 살면서 비행기를 놓친 적이 3번 있었다. 한 번은 출발 공항을 헷갈려서 엉뚱한 공항에 가서 티켓 스캔을 하면서 깨달았고, 한 번은 트랜짓 시간도 넉넉했는데 공항에서 딴짓에 정신이 팔려서 놓쳐서 공항에서 하루 노숙했고, 한 번은 온라인 체크인을 제대로 끝내지 않아 공항에서 내 눈앞에서 내 비행기가 탑승중인데 못탔었다. 물론 금전적 손해는 고스란히 나(와 부모님)에게 돌아왔다. 그 뿐인가, 열쇠나 지갑, 스마트폰을 자주 잃어버려서 대체하는데만 돈을 얼마나 썼는지 모른다. 지금은 이 모든 실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까지 들어놨다. 이렇게 ADHD로 살면서 실수에 들어가는 돈을 ADHD세 (ADHD Tax) 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ADHD가 신용에 끼치는 안좋은 영향을 생각하면 위의 실수들은 애교이다. 어떤 청구서를 제때 지불하는 것을 잊어버려서 신용 등급이 내려가는 일도 ADHD인에게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충동성을 제어 못해서 충동적 소비로 신용카드를 한도까지 긁고 카드빚을 갚지 못하는 일도 많이 일어난다. 이 쯤되면 ADHD를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정말 인생에서 심각한 피해를 주는 금전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다행히도 적어도 나같은 경우에는 ADHD 약물 치료의 도움을 금전적인 면에서도 많이 받고 있다. 일단 각종 구독 해지 신청을 못해서 돈이 줄줄 새는 일이 줄어들었고, 각종 충동 구매도 줄어들었다. 사실 소비욕구 같은 경우는 ADHD 약물치료 이외에도 정기적인 건강한 도파민 활동, 가족과 친구와 친밀한 시간 보내기, SNS 덜 하기 등 여러가지 정신건강에 좋은 활동을 늘리면 줄이기 더 용이하다. 인지행동 치료도 도움이 되는 걸로 알고있다. 그러니 ADHD가 나의 금전 생활을 갉아먹고 있다면 꼭 전문가나 가족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 열심히 일하고도 내가 번 돈이 허투루 사라지지 않도록. 

4. 각종 사고 노출 위험이 많아진다 

ADHD를 가진 사람이 실수를 많이 한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사고에도 그만큼 많이 노출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대중교통비가 비싼 북유럽에서 4년간 살면서 다른 북유럽인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탈 때 마다 정말 불안했고 사고를 낼 뻔한 적도 몇번 있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딴생각 하거나 딴 곳을 보기는 일쑤고, 많은 ADHD인들이 발달성 협응장애 (Dyspraxia)라는 발달장애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공간 지각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나와 다른 사물사이의 거리가 가늠이 잘 안되어 부딪히기도 많이 부딪힌다. 더 나아가서, 각종 중독과 충동성에 취약한 ADHD인들은 안타깝게도 음주운전을 할 확률도 높고, 그 결과로 자신이나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도 꽤 많다. 자칫하면 나와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운전 면허 따기는 정말 주저된다.

 

안전 사고의 위협은 도로에서만 끝나는게 아니다. 주방에서 칼을 부주의하게 쓰다가 다칠 수도 있고, 또 스토브를 깜빡하고 켜놓고 잠들기라도 하면 (내가 그런 적이 몇번 있다) 화재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ADHD인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항상 내 실수로 나 자신 혹은 다른 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ADHD인으로 살아가면서 실수는 상수이다. 약물 치료를 받아도 실수를 안하고 살아가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는 약물치료 이후 실수의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약물 치료 이외에도 많은 일상속 안전 장치를 남들보다 좀 더 신경써서 구비해놓으려 한다. 손해 보험이라던지, 가정용 소화기라던지. 이 역시 남들보다 지출이 되니 ADHD세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쩌겠는가. 나에게 쥐어진 패를 수용하고 거기에 맞는 해결책을 세울 수 밖에.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이 전혀 실수하지 않고 살기는 기대하진 않지만, 내 실수에 내가 책임지는 삶을 살려고는 노력한다. 

 

5. 삶에서 중요한 관계를 놓칠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좋은 관계는 행복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하지만 많은 ADHD의 증상들은 인간 관계에서 오해를 사기 좋다. 입에 모터가 달린 것 처럼 끝없이 말하고, 충동성 제어를 못해 눈치없는 말을 내뱉고, 타인이 말할 때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연관 없는 대답을 하는 등의 증상은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많은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왕따를 당한 경험 역시 가지고 있다.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집을 항상 어지럽혀 놓고, 부탁한 것을 까먹기 일쑤고, 연락에 제때 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나 같은 경우엔 메시지를 받고 '이따가 제대로 답장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뇌에서 미리 답장할 내용을 생각해 놓고 실제로 답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 경우가 정말 많다.) 더 나아가서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까닭에 충분히 좋은 배우자나 연인을 두고도 외도를 해서 직접 관계를 파괴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 친구, 연인은 그나마 ADHD의 여러 증상을 인내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회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일단 일적인 맥락에서 처음부터 나의 신경발달장애를 밝히기는 쉽지 않고, 상대가 나의 ADHD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오해가 증폭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그러면 직장 생활을 비롯한 사회 생활이 자꾸 꼬이게 되고 여러가지 내가 실현하고 싶었던 꿈을 잃을 기회도 많이 줄어든다. 

 

ADHD로 인한 관계 문제들에 약물 치료도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뇌가 다르게 태어난건 내 잘못이 아니고, 상대 역시 그런 뇌를 타고나지 않은건 그가 잘나서가 아니고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일단 서로가 이걸 이해해야한다. 많은 ADHD인들은 평생 소외당하고 거부당하고 혼난 경험을 많이 안고있고, 그 경험을 안고있는 본인이 가장 아프다. 또 소외당하는게 두려워서 상대에게 과도하게 맞추려 노력하다가 번아웃 되거나 나 자신을 잃기도 한다. 그러니 '엄마라면, 여자친구라면, XX라면 응당 이렇게 해야해'라는 신경정상인들의 관계 역할 설정에서 좀 벗어나서 현실적으로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을 줄 수 없는지 허심탄회하게 소통해야한다. 상대방의 필요도 중요하지만 나의 필요도 그만큼 중요하다. 또한 많은 ADHD 관계 문제들이 내가 ADHD라는 것을 깨닫고 나에 대한 이해를 함으로써 더 나아질 여지가 많다.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면, 그건 상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충분한 도파민을 주고있지 않구나, 라고 깨닫는것 만으로도 관계를 파괴할 확률이 줄어든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에 솔직하게 내 정신 질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지만, 미국 같은 경우에는 ADHD도 장애에 포함되어서 장애를 이유로 해고할 수 없고 법적으로 ADHD 인이 더 잘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줘야한다. (예를 들어서 유연한 출퇴근 시간이라던가, 업무 지시는 구두로 말고 서면으로 내린다던가.) 우리나라에서도 발달장애나 정신질환을 이유로 해고당하지 않고 서로 좀 더 배려하면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 더 나아가서는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어떤 ADHD를 가진 사람은 눈물을 흘릴수도 있겠다. 왜냐면 나도 처음 ADHD 병식이 생기고 증상에 대해 공부하면서 위에 나열된 사실들을 알았을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인생의 여러 면에 걸친 저주 같은 말들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여태까지 했던 실수들, 그리고 실망 시켰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자기 연민은 5분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장애가 있어서 그랬을 뿐인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비난하고 몰아세웠던 사람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것도 지금은 꽤 많이 나아졌다. 나도 2n년을 살면서 내가 ADHD인지, 성인 ADHD가 뭔지 제대로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도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말해주고 설명해주면 되는거다. 이제 알았으니 꾸준히 치료 받고, 도움을 받고, 안되는 부분은 그냥 나의 일부로 여기고 살아가면 된다. 

 

내 인생은 원래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 지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내가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포함이 된다. 도움 받는 것은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그 도움을 요청하는 것 역시 마음의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이가 어떻게 약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도움을 주고 받고 살아가고, 인류의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 ADHD인으로서, 우리가 도움과 배려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만큼 다른 이들을 도와주며 살면 된다. 

 

평생 정신과 치료에 '의존'해야 한다는 전망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자. 위가 약하게 태어난 사람은 평생 내과를 내집처럼, 만성 비염이 있는 사람은 평생 이비인후과에 내집처럼 드나들어야 할 것이다. 사실 나는 세상을 나쁜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정신과에 대한 쓸데없는 편견을 조장하면서 정신과에 가봐야할 사람들이 가지 못하도록 막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나아지게 하는 것만으로 내 공동체는 좀 더 나은 곳이 된다. 내 정신건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야말로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 역시 어느정도 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이 ADHD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어린이들에게 ADHD가 발견되어서 조기 진료 되었으면 좋겠고, 더 많은 성인들이 자기가 평생 가지고 있던게 ADHD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고, 더 많은 신경정상인들이 '아 ADHD는 이런거구나~'하는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ADHD 진단과 치료에 대한 접근권이 훨씬 더 수월해졌으면 좋겠다. 치료하고 증상을 조절하면 누구보다도 다채로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있지만, 발견되지 못하고 치료받지 ADHD는 인생에서 정말 많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그 누구도 ADHD로 치료를 받고 도움을 받는데에 걸림돌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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