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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라이프

독일어 Telc C1 야매로 공부해서 합격한 후기

by 벨리너린 2021.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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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산지 3년 반만에 드디어 Telc C1 합격증을 손에 넣었다 !! 독일에 유학와서 정착하는 데에는 집 구하기, 비자 발급받기, 학교 합격하기...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내게는 C1 합격이 가장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남들은 이미 유학오기 전에 C1을 받고 학교에 합격해서 유학을 오거나, 아니면 애초에 어학 비자로 1-2년 대입 준비를 해서 어학을 따고 입시를 하는데, 나는 독일에서도 영어로 대학원을 나와서 사실 학업을 마치고 나서야 반년 후에 C1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나는 독일어를 정말 띄엄띄엄, 야매로, 정석적이지 않은 단계로 공부했다. 내가 했던 독어 공부 과정을 좀 정리해보면, 

  • 2016년 상반기: 듀오링고 독어 과정 끝내기 (A1정도 수준)
  • 2016년 여름: 베를린 어학원에서 한달 반동안 A2.1 수강
  • 2017년 상반기: 북유럽에서 북유럽 언어로 (...) 한달 반동안 B1.1 수강
  • 2017년 하반기: 베를린에서 두어 달동안 B2.1 수강
  • 2018년 하반기-2019년 상반기: 베를린에서 신문기사, 학술 논문 독해 격주 과외 (작문도 조금 포함) B2-C1 수준
  • 2019년 여름: 한달 동안 B2 급수 시험 준비반 들어갔다가 선생님이 넌 B2 그냥 붙을 것 같다고 해서 돈아까워서 시험 안보고 바로 C1 반으로 넘어감. 회사에 한달 휴가내고 베를린에서 C1.1 인텐시브 코스 수강
  • 2020년 하반기: 베를린에서 3주간 Telc C1 준비반 일주일에 2회 다님 (총 6세션)

위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A1은 아주 스킵했고 (듀오링고 끝내고 나니 어학원 레벨 테스트 보면 A2 나오길래 그냥 A2로 들어갔다) 각종 학원 수업도 굉장히 띄엄띄엄 짤막하게 다녔고 A2.1를 들으면 A2.2를 듣고 나서 B1.1로 가야 하는데 그냥 스킵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었다. (참을성 없고 순서를 안지키는 ADHD인의 학습법...) 그러나 독일어만큼은 기초부터 어느 한 단계도 스킵하지 않고 차근차근 어학원을 다니면서 배우라고 조언하고 싶다. 저렇게 했다가 C1 급수 공부 수험 생활 중에 땅을 치면서 거의 울면서 후회했기 때문이다. 독일어는 특히 문법 중심의 언어이기 때문에 A1, A2, B1에서 배우는 기초 문법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중요한 단계들을 다 건너뛰고 문법 공부를 하도 띄엄띄엄 야매로 해서 시험 보는 날 아침까지 수동태랑 wäre, hätte, möchte 의 올바른 용법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실 C1 시험 본 이후에야 mögen의 변형이 möchte인 것을 남자친구 A1 숙제 도와주다가 알았다.... 난 둘이 그냥 다른 동사인줄 알았어 ㅋ 합격한게 아직도 미스테리... 역시 배움은 끝이 없다 ㅎ) 그러니 C1 시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리 용어는 정치 용어, 경제 용어로 표현하고 독해 할 수 있는 C1이더라도, 직접 문장구조를 만들어서 말하고 쓰는 수준은 좀 근본없이 처참했다. 듀오링고는 훌륭한 학습 도구이지만 독일어의 경우엔 절대 듀오링고만 단독적으로 공부하지 말고 선생님과 함께 A1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보조 학습 도구로 쓰는걸 추천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할일이 별로 없던 차, 아버지가 노느니 독어 급수나 따 놓으라고 해서 다시 1년 넘게 쉬었던 독어 공부를 재개할 결심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하기엔 공부량을 너무 낮게 평가한것 같다. B2에서 C1 수준으로 올리는 데에는 A1에서 B2까지 공부했던 총량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생각없이 질러놓고 막상 하고 보니 너무 힘들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결국 끝을 보는게 내가 살아왔던 방식 아니던가. C1 시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건 9월 중순 즈음이었고, 2개월 조금 넘게 본격적으로 공부해서 11월 20일에 시험을 봤다. 정말 부끄럽지만 C1 급수 공부 시작하기 전엔 한번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나 스스로 독일어를 "공부"하려고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학원을 다닐 땐 숙제도 학원가는 버스에서 겨우 해갔던 정도였고 그나마 해가는게 다행인 수준이었달까. (초등학교때 영어학원 다닐때 숙제는 항상 학원가는 버스에서 했던 것 처럼... 성인이 되면 나는 좀 나아질 줄 알았다.. 성인 ADHD는 치료해야하는 장애입니다 여러분) 조금 변명을 하자면 일단 독일에서 항상 영어로 공부하고 일했었기 때문에 나에게 독어 급수를 요구하는 곳이 전혀 없었고, 따라서 항상 현생에 치여 독어 어학공부가 한번도 우선순위였던 적이 없었다. 또 전에 살던 북유럽에서도 북유럽 언어를 B2까지 배웠었는데 북유럽 언어는 영어랑 비슷하고 문법도 쉬워서 그냥 설렁 설렁 학원에 출석만 하는 것만으로도 "습득"이 가능한 언어였어서 독어도 비슷한 자세로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독어는 "습득"으로 높은 급수까지 올라가기 불가능한 언어였다. 독어는 "공부"되어야만 한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 중 차근차근 기초부터 정석대로 공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 처럼 발등에 불 떨어져서 C1 급수 준비를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내가 2개월동안 Telc C1 시험을 준비한 전략을 좀 공유해보려고 한다.

 

1. Telc C1 시험 준비반에 등록 

 

일단 Telc 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집 근처 어학원의 Telc C1 시험준비반에 등록했다. 사실 TestDAF, Goethe Zertifikat 와 같은 다른 시험을 두고 Telc를 굳이 선택한 이유도 단순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어학원에 있는 급수 준비반이 Telc 밖에 없었고 집 앞 어학원에서 Telc 시험장까지 운영해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다녔던 Telc C1 시험 준비반은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일단 세션이 6회밖에 되지 않아서 수박 겉핥기식 시험 문제 유형 파악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말하기와 쓰기는 혼자 문제를 풀고 채점하는게 불가능한 영역이기에 이 부분에서의 피드백을 기대하고 학원에 등록한 것이었는데, 쓰기 첨삭은 딱 한번 그냥 문법 틀린것만 고쳐주는 수준이었고 말하기는 연습하고 피드백 받을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어학원 다닌 기간이 짧기 때문에 독어로만 듣고 말한 경험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일주일에 두번 학원 가서 독어로만 이야기했다는 장점 딱 하나만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어학원에서는 C1 급수 준비반에서 좀 더 인텐시브하게 작문 첨삭과 말하기 연습을 한다고 하는데, 비용면에서 좀 더 비싸더라도 여력이 된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2. 독해 - 어휘와 문법 문제집, 신문 읽기

 

내가 공부했던 어휘 교재 (좌)와 문법 교재 (우)

일단 내가 공부했던 어휘와 문법 교재는 위와 같다. C1 급수를 따는데에 교재를 딱 한권 산다면 바로 저 좌측에 있는 어휘 교재라고 할 정도로 강추한다. 나도 어느 다른 분 C1 합격 후기 블로그 포스트를 보고 산 책인데, 일단 어휘가 테마별로 정말 잘 정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따로 시간내서 암기하지 않아도 그 챕터에 있는 예문만 다 풀어도 자연히 그 어휘가 습득되고 B2-C1 문법, 작문까지 해결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 한 챕터를 풀 때마다 신문에서 정확하게 이해되는 어휘가 급격히 늘어났다. 나는 B2에서 C1으로 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휘라고 생각하고, 저 교재가 확실히 내 독해력을 B2에서 C1으로 올려줬다고 생각한다. 

 

오른쪽에 있는 문법책은 전세계 독어 학습자라면 한번쯤 봤을 것 같다. 자주색 표지의 A1-B1 Grammatik Aktiv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진실을 성토하자면 난 사실 C1 급수 공부하면서 저 연두색 표지의 B2-C1 문법 교재보다는 자주색 표지의 A1-B1 문법 교재를 더 자주, 열심히 들여다 봤었다. 워낙 기초 단계를 야매로 배워서 기초 문법에 구멍이 많았기 때문에 세련된 문장구조를 만드는 것보다 기본 문법을 안틀리는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초 단계에서 어학원 다니며 차근차근 문법 공부를 해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연두색 표지를 추천한다.  

 

왼쪽 어휘 문제집은 매일 한 챕터씩 풀려고 노력했고 (시험 전에 다 풀지는 못하고 한 3/4정도 내 전공에 중요한 챕터 위주로 풀었던 것 같다) 오른쪽 문법 문제집은 ㅎㅎㅎ 기초 문법 보충하느라 시험 전까지 한 20%도 못푼 것 같다. 그래도 알바 왔다갔다 하는 지하철 안에서 문법책 한 챕터씩 풀려고 노력했다. 비록 C1 시험은 끝나고 합격증까지 받은 상태지만 위 두 문제집은 앞으로도 남은 부분을 꾸준히 공부해보고 싶다. 

C1 어휘 교재 내부
C1 문법 교재 내부
Zeit Online 을 브라우저 시작 화면으로

그리고 독해 부분에서 가장 꾸준히, C1 시험 공부 하기 전에도 해왔던 습관은 신문 기사 읽기였다. 이건 영어 공부 하던 시절에도 해놨던 습관이었는데, 바로 웹 브라우저 첫 기본 화면을 구글이나 네이버로 해 놓는 것이 아니라 독어 신문 사이트 첫 화면으로 해 놓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굳이 일부러 찾아 들어가서 신문을 읽지 않아도 매일 독어 헤드라인에 노출되는 것 만으로도 독해 연습이 된다. 게다가 좀 관심가는 헤드라인이 있으면 클릭해서 읽어보면 더 좋고. 사실 코로나 시대에 독어 독해력이 급등한 것 같다. 아무래도 독일에서의 코로나 관련 뉴스는 독어로 가장 먼저, 정확하게 뜨니까. (굳이 Zeit으로 해놓은 이유는 딱히 없고 독일 처음 와서 생각난 신문사 이름이 Zeit 밖에 없었기 때문. 독일 친구들은 꽤 괜찮은 신문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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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해 - 독어 팟캐스트 듣기, 시트콤 보기

 

독어(를 비롯한 유럽 대륙 언어)를 배우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이 있다면 바로 외국어 학습자를 위한 시청각 자료가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나 한국어는 각종 드라마와 영화가 넘쳐나서 학습 자료가 아주 풍부하다. 영어를 한창 배우던 시절엔 프렌즈, 섹스 앤더 시티 등 각종 실전 회화 배우기에 적합한 시트콤들을 돌려 봤었다. 처음엔 한글 자막, 다음엔 한영 자막, 다음엔 영자막, 다음엔 자막 없이 보는 식으로. 할리우드나 한국 드라마 업계에는 자본도 아주 풍부하기 때문에 내 입맛에 맞는 시청각 컨텐츠를 골라 보면서 어학 공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뚜둥... 독어 컨텐츠는 그렇게 즐길만한 것들이 많지가 않다. 물론 세계적으로 훌륭한 독일 영화들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절대적인 컨텐츠 수가 적고, 아예 아주 예술적이어서 외국어 학습자가 어학 목적으로 보기엔 너무 어렵거나 아니면 아주 유치해서 봐주기 어렵거나 하는 식으로 양극화된 경우가 많다. (후자의 경우는 유치하기만 한게 아니라 각종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클리셰까지 참아가면서 봐야한다.) 나같은 경우엔 독일에 온 후 99.9% 영어로만 인간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실전 회화, 구어체 청해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독일인 친구들도 나의 부족한 독어를 참아주기보다는 서로 가장 편한 제1외국어인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했으니까. 그래서 미디어 소비로 절대적인 독일어 청해 노출을 늘려야만했다.

 

시트콤 <베를린, 베를린>의 시즌 1 캐릭터들

그래서 결국 내가 독일 넷플릭스에서 찾을 수 있었던, 그나마 미드 프렌즈와 좀 비슷하게 볼 수 있었던 시트콤은 Berlin, Berlin 이라는 시리즈였다. 당시 나름 개방적으로 쓰려고 했겠으나 역시나 지금 감수성으로는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그리고 인종차별 적 대사가 난무하지만 그나마 가장 봐줄만 했다. 내가 사는 베를린이 배경인데 2000년대 초반의 베를린의 모습이 어땠는지 보는 재미도 있었고, 시즌 1에서는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었다. C1 시험 공부하는 동안 밥먹고 쉬고 싶을 때마다 Berlin, Berlin을 독일어 자막으로 틀어놓고 봤고, 구어체 습득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9월 중순에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독어 자막 없이는 알아듣기 어려웠는데, 11월 중순에 시험보기 직전에 다시 보니 그냥 백그라운드로 틀어놓고 자막을 보지 않아도 이해가 많이 되더라. (단점이 있다면 베를린 사투리가 갑자기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ㅋ)

 

Language Learning with Netflix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넷플릭스와 구글 크롬 사용자라면 Language Learning with Netflix라는 확장 프로그램도 추천한다. 이 확장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넷플릭스 볼 때 원어 자막 아래에 영자막이나 한글 자막도 조그맣게 떠서 원어 자막으로만 시청하기 어려울 때 많이 도움이 된다. 단, 모든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 넷플릭스 컨텐츠에 원어 자막과 영어/한국어 자막이 모두 제공 가능 할 때 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화면 캡쳐하려고 하면 저렇게 까맣게 영화 화면이 지워지는구나.)

 

내가 들었던 독일어 팟캐스트들

다음은 내가 들었던 독일어 팟캐스트들이다. 나는 C1 급수 준비를 하는 분이라면 Zeit Online에서 만드는 Was jetzt?라는 뉴스 팟캐스트를 많이 추천한다. 일단 신문사에서 거의 매일 나오는 팟캐스트이고 에피소드 하나당 10분밖에 되지 않아서 매일, 꾸준히, 습관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나는 B2 시절부터 Was jetzt?는 매일 아침식사를 준비하거나 통학 지하철에서 꾸준히 들어왔었고, 덕분에 오히려 일상 회화보다 시사 뉴스가 더 잘 들릴 정도였다. Was jetzt?를 들으면서 독어 시사 청해가 좀 늘어난다면 다른 좀 더 긴 독일어로 된 뉴스나 시사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깊이를 더해가도 좋다. 독일에서 공부하거나 취업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 전문 팟캐스트를 들어도 좋고.

 

그러나 우리나라 말로도 가끔 진지한 뉴스를 듣는게 피곤할 때가 있는데, 독어로는 오죽하랴. 그래서 다른 좀 더 가볍고 쉬운 팟캐스트도 추천한다. Was, wenn은 유튜버 출신 여성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팟캐스트인데, 아무래도 십대-이십대 초반 여성을 겨냥한 팟캐스트라서 좀 조잘 조잘 수다떠는 기분이고, 주제와 문장구조도 쉽고 가볍다. 연애라던가, 여행이라던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라던가, 하는 주제라서 그냥 백그라운드로 틀어놓기 부담없고 B1 수준부터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Datenight은 독일 틴더에서 만드는 소개팅 팟캐스트인데, 진행자 혼자 말하는 팟캐스트보다 2-3인이 대화로 이어가서 실전 회화 청해에 좋은 것 같고 아무래도 연령층이 20대-30대 정도 되다보니 대화 주제도 Was, wenn보다는 조금 더 다양하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소개팅이다보니 너무 무거워지지도 않고, 어느정도 흥미도 있는 편이라서 뉴스 듣기 피곤할 때 듣기 좋다. Datenight은 한 B2 정도 된다면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컨텐츠인것 같다.

+ 2022.01.09 추가 수정 

청해에 정말 좋고 구사 언어 수준이 그렇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힙하고 촌스럽지 않은 독일 시리즈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DRUCK! 노르웨이에서 대히트한 SKAM의 독일 리메이크 버전인데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이고, 특히 시즌 5부터는 노르웨이 원작에서 벗어나 베를린 문화 특유의 스토리 라인들이 생기면서 더 재밌어졌다. 더군다나 유튜브에서 전 시리즈를 무료로, 독어 자막과 함께 볼수 있으니 청해에 이보다 좋은 컨텐츠가 없는 것 같다. 

 

4. 작문 - 원어민 친구에게 첨삭 부탁하기 

 

독일 온지 오래 되고나서 독어 급수를 따는 것의 장점이 있었다면, 바로 독어 공부를 도와줄 독일 원어민 친구들이 꽤 있었다는 것 아닐까. 일단 독어 C1 급수를 따겠노라고 결심을 공표한 이후, 많은 독일인 친구들이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반강제로 독어로만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자고 했다. 일상 회화에서 독어로 말하기엔 더듬거리기도 많이 더듬거리고 서로 참기가 어려워져서 바로 영어로 전환하게 되는데, 문자메시지는 그래도 시간 간격을 더 두고 하는 것이니 서로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구들과 독어로 문자를 주고받기로 한 이후로 독어로 문장을 만드는데에 대한 망설임이 훨씬 없어지고 좀 더 자신있게 독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C1 급수를 따려면 아무래도 훨씬 더 큰 도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C1을 통과한다는 것은 대학에서 독어로 공부할 언어 능력이 된다는 것이고, 대학에서 요구하는 작문은 그냥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서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작문 실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건 모국어로도 쉽지 않은 것이고, 특히 한국처럼 애초에 모국어로 공교육에서 작문 교육을 충분히 받지 않는 경우라면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나는 Abitur를 이수하고 독어로 대학을 나온 원어민 친구들에게 C1 작문 파트 연습 에세이 첨삭을 부탁했다. (문과나 사회과학 전공한 친구면 더더욱 좋다.) 처음엔 첨삭에 소정의 돈을 주겠다고 했으나 친구들은 하나같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했고, 그래서 난 결국 시험에 붙으면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단순한 문법 교정 뿐만이 아니라 학문적인 수준에서 어색한 표현이나 문법적으로는 옳지만 지적이지 못한 문장 구조도 죄다 교정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돈주고 급수 시험 경험이 있는 전문 과외 선생님에게 맡길 여력이 된다면 이게 베스트이다.)

 

처음 9월 중순에 써본 에세이는 처참했다. 일단 시간내로 충분한 글자수를 쓰지도 못했을 뿐더러, 기본적인 Deklination 도 다 틀렸었다. 심지어 이미 알고 있던 주어-동사도 제대로 매치가 안되고 문장구조도 단순한 문장구조밖에 쓰지 못해서 선생님과 친구들 표정이 ㅎㅎㅎ C1 수준은 아니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몇번 들었었다. 솔직히 첫 에세이 첨삭 받고 나서 C1 합격은 못할 것 같아서 아 시험 준비 기간을 좀 더 늘려야하나... 하고 고민도 했고 울고 싶었다. 

시험 보기 전 마지막으로 쓴 모의고사 에세이를 친구에게 첨삭받은 것 일부 발췌.

시험 공부하는 2달동안 적어도 1주일에 한 편씩은 새로 써서 첨삭을 받았던 것 같은데, 다행히도 에세이를 쓰고 첨삭을 받을 수록 제한 시간 내에 쓸 수 있는 글의 양도 많아졌고, 조금 더 복잡한 문장구조도 더 자연스럽고 자신있게 쓰게 되었고, 세련된 표현도 더 배운 것 같았다. 처음에 쓸 때는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가기가 굉장히 망설여지고 힘들었는데, 마지막에는 비교적 술술 써내려가졌다. 또 앞서 언급했던 어휘 교재와의 시너지가 엄청나서, 거기서 배웠던 어휘들을 써먹을 수록 작문 실력이 쑥쑥 올라갔다. 친구에게 첨삭을 받고 나면 그냥 '아 이런 실수를 했군'하고 눈으로만 보고 넘어가는게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다시 더 옳은 버전으로 옮겨 썼다. 옮겨 쓴 후에도 친구에게서 새로 배운 고급스러운 표현이나 자주 틀리는 문법은 따로 적어두고 문법책에 해당 챕터를 다시 풀었다. 이렇게 공부한 결과 가장 자신이 없었던 작문 파트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수를 얻었다. 친구들에게 아주 기쁘게 밥을 사줄 것 같다. 

 

(시험 공부하는 기간 동안에는 일기도 독어로 썼었다. 이렇게 하니까 일기 내용이 아주 간결해졌다 ㅋ)

 

5. 말하기 - 혼자 연습하고 녹음해서 듣기 

 

말하기는 연습할 기회가 정~~~말 부족했다. 읽기나 듣기는 내가 원할 때 마다 수동적으로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고, 쓰기는 첨삭을 항상 받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연습하고 싶을때마다 글을 써내려가면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절대적인 어학원 수료 시간이 짧고 독어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말할 기회가 부족했다. 특히 내가 독어 시험 공부를 시작했을 때가 한창 베를린에서 코로나로 다시 분위기가 안좋아졌을 때라서 독일인 친구들과 만나서 프리토킹 하기도 굉장히 어려워졌다. (그리고 영어로 사귄 친구들과 독어로 프리토킹 하는 것은 양측에 굉장히 어색한 경험이다.) 그래서 사실 C1 시험을 볼 때 까지 말하기 연습이 제일 부족하고 체계적이지 못했고,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시험을 보고 난 후에도 내 실력을 종잡을 수가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어휘와 문법, 작문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말하기의 근간은 쌓아올려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좀 민망하지만 혼자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집에서 혼자 요리할 때도 독일어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주절주절 혼잣말을 했고, 화장할 때도 마치 겟레디윗미 영상을 찍는 유튜버마냥 (...) 독어로 주절주절 설명을 했다. 말하기의 유창함은 정말 부족하고 자신이 없었기에 혼자서라도 그나마 유창함을 늘려놔야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모의고사를 준비하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모의고사에 나온 말하기 파트를 혼자 해보고 녹음해서 들었다. 물론 이것도 굉장히 민망하고 자기 목소리를, 그것도 가뜩이나 어려운 독어를 녹음해서 듣는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어학실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된다. 말할 때 특히 아는 문법도 틀리는 경우가 있는데, 연습 할 때마다 지난번 녹음에서 실수한 부분을 좀 더 신경써서 말하는 연습이 유창함 향상에 많이 도움이 됐다. 시험 준비 처음 할 때 녹음한 내용과 2개월 후 시험 직전에 녹음한 내용 들어보면 문장 길이와 유창함의 차이가 많이 난다. Telc C1 말하기 부분에는 상대방의 프레젠테이션 내용도 요약하고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시험 직전에는 특히 유튜브에서 Telc C1 말하기 부분 모의고사 영상을 찾아보고 영상에서 나온 시험응시자가 한 말을 요약하는 연습도 해봤다. 또한 내가 해봤던 대화 연습 방법으로는, 구글에 '100 Fragen' 같은 독어 문답 리스트를 검색해서 녹음기를 켜놓고 그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당일 시험장에서 쓰기 부분 시험이 끝나고, 얼른 내 말하기 시험 파트너를 찾아서 그녀와 주절주절 수다를 떨었다. 루마니아에서 온 중년의 아주머니였고, 아주 다행히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기가 편했다. 그녀의 독일어는 꽤 유창하고 명료하면서도 그렇게 알아듣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말하기 시험은 파트너 복이 정말 중요하다는데 나는 그런 면에서 서로 잘 맞는 파트너가 지정되어서 정말 운이 좋았다.

 

6. 전반적인 모의고사 

 

내가 사용한 독일어 Telc C1 모의고사 책

시험 보기 4-5일 전부터는 하루에 모의고사 1개씩 풀었다. 위의 교재에는 모의고사 총 3개가 들어있고 학원에서도 모의고사 1세트를 했으니 총 4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시험 공부 초기에 첫 모의고사를 봤을 때의 결과는 ㅎㅎㅎ C1 합격이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한문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만한 점수가 나왔었다. 그러나 시험 직전에 본 마지막 모의고사 2개의 결과는 적어도 독해와 청해 부문은 합격 안정권 수준이었다. (독해에서는 거의 첫 두파트는 다 맞고 마지막 파트에서 두세문제 틀리는 정도?) 결국 시험 결과도 비슷하게 나왔다. 


대망의 독일어 Telc C1 합격증
독일어 Telc C1 점수 기준표

시험 보고 6주 후에 이메일로 결과를 받았다. 나는 Ausreichend만 나왔어도 감지덕지일줄 알았고 제발 떨어지지 않았길...! 하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어봤는데 웬걸..! Befriedigend, 그것도 꽤나 높은 점수였다! 1.5점만 더 받았으면 Gut 까지 받았을 정도. 사실 시험 점수를 보면 객관식 문법과 어휘를 테스트 하는 Sprachbausteine는 반타작도 안나왔고 (ㅎㅎㅎ 야매로 띄엄띄엄 배운 독어 티가 난다) 청해도 좀 말아먹었는데 (청해 Teil B는 못알아듣고 놓친 문제가 많아서 거의 반타작이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오히려 더 불안했던 Schriftlicher Ausdruck (작문)하고 Mündliche Prüfung (말하기)가 꽤나 고득점이 나와서 정말 놀랐다. 특히 작문이 48점 만점에 44점 나올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점수가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내꺼 맞나 다시 이름을 확인해봤다. ㅎㅎ 

 

새로운 언어를 하나 배운 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하나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독일어 Telc C1 급수를 딴 지금도 "독어를 마스터했다!"라는 느낌이 들기 보다는 이제 앞으로 예전보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독일 사회에서 좀 더 독일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읽고, 또 독일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 정도가 된 것 같다. 독어 급수 시험을 보고 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영어가 아닌 독어로 의사와 의학적인 대화를 했는데, 완벽하지 않더라도 의사소통을 해낸 내 자신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물론 간호사가 했던 말 한마디는 여전히 못알아들어서 wie bitte?라고 몇번 되물었고 끝까지 못알아들어서 간호사가 결국 영어로 말해줬다. 문진표에도 모르는 병명이 많아서 구글 번역기 써가면서 작성했다.) 2020년까지만 해도 관공서나 통신사와 대화를 할 때 "영어 할 수 있나요?" 먼저 물어봤었는데 2021년부터는 자신있게 독어로 말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 이젠 영자막 없이도 독어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연설을 듣고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고, 독일 오기 전부터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독어로 헤르만 헤세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의 저서중 가장 짧고 여러번 한국어와 영어로 읽어봤던 싯다르타로...) 2021년에는 예전에 같이 영어 토론하던 친구들을 꼬셔 독어로 토론 클럽 연습에도 참가해보고 싶다. (그 친구도 아마 밥 사준다고 꼬셔야 가지 않을까 싶다...) 예전엔 베를린에서 영어로 된 강연이나 공연, 전시 기회만 참가할 용기가 났는데 이젠 100%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독어로만 된 문화 행사에도 자신있게 참가할 수 있을 것 같다. 100% 알아듣지 못한다고 독어로 된 기회를 자꾸만 피한다면 100% 알아듣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테니. '베를린에서는 독어가 필요 없다'라는 상식이 만연해 여태까지 독어 공부를 게을리 했었는데, C1 급수를 따고 나니 같은 도시에 살더라도 내 세계는 더 넓어졌다. 독일어를 배우는데 A1부터 C1까지 4년가량 걸린 셈인데, 인생에 고작 4년 투자해 언어 하나를 익힐수 있다면 해볼만하지 않는가. (게다가 나는 설렁설렁해서 4년이 걸린거지 대부분의 다른 유학생들은 1년만에 이 과정을 끝내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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