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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라이프

베를린에 오게 된 이유

by 벨리너린 202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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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도착한지도 이제 3년이 더 지났다.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 보다 3살이 더 먹어서인지, 아니면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바람잘날 없는 일상을 제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믿겨지지 않도록 빨리 지나갔다. 빠르게 나를 스쳐지나가는 베를린에서의 시간을 기록해보고, 또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블로그를 통해 나의 기록을 좀 나눠볼까 한다. 

 

나는 2017년 여름 베를린에 여행가방 두개를 끌고 왔다. 첫 방문은 아니었다. 이 전에 북유럽에서 4년 유학생활을 하면서 베를린에 여행차 자주 놀러오기도 했고, 2달여간 에어비엔비를 빌려 베를린에서 살아보기도 했다. 북유럽에서의 시간동안 내가 배우고 성장한 부분도 많았지만, 항상 이방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항상 현재에 만족하는 북유럽인들의 일상이 평화롭고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20대의 나이엔 작고 단조롭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베를린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인 느낌이 들었고, 내가 딱히 적응하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북유럽에서는 그곳이 내 '집'이라고 느끼는 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베를린에서는 도착하자마자 내 집인 기분이 들었다. '나'로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생각보다 하루 하루 정말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 '나'로 존재하는 것 이상의 자유는 없다.

 

베를린은 Arm aber sexy--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로 잘 알려져있다. 북유럽에서 살았다면 베를린에서의 1.5-2배가량의 돈을 쉽게 벌며 살 수 있었겠지만, 오히려 모든것이 비싼 북유럽에서 내 삶은 좀 더 가난하게 느껴졌었다. 북유럽에선 학생일 땐 외식은 고사하고 끼니별 단가 계산해가면서 샌드위치를 싸 다녔고, 취직을 하고 나서 그나마 한달에 외식을 한 번 하면 많이 하는 것이었으니까. 또한 북유럽 사람들이 느긋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적은 근무시간 내에 많은 업무를 소화해야함으로 친구들과 3주전에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만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베를린에 온 이후로 생활비는 훨씬 적지만, 월세도, 식비도 훨씬 싸고, 당일에 '밥 먹을래?'하면 흔쾌히 '콜'하고 바깥에서 외식하기도 쉬웠다. 때문에 적은 돈으로도 베를린에서는 훨씬 인간답게 사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베를린 내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음악이었다. 클래식이면 클래식, 고요한 앰비언트나 드론 뮤직 같은 현대음악, 그리고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테크노. 전세계 뮤지션들이 죄다 베를린에 모여서 살 만큼 베를린에서는 원한다면 일주일에 한번 이상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었다. 음악이 전공인 사람도 아닌데 이런 이유로 이민을 결심한다는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살 도시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내 영혼을 촉촉하게 해주는 예술에 대한 접근 가능성은 그 어떤 취업 가능성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이유들로 혼자서 베를린에 왔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 베를린에 이민 올 때는 '내가 너무 많은 환상을 가지고 가서 환상이 깨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좀 했었다. 북유럽에 갈땐 환상을 가지고 가서 환상이 많이 깨졌었으니까. 그러나 베를린에서 산지 3년차가 감히 말해보면, 베를린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내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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