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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라이프

독일에서 취업하기 (1) - 베를린 스타트업

by 벨리너린 202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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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0개월의 취준기간을 거쳐, 드디어 취업을 했다! 

10개월이 누군가에겐 길고, 누군가에겐 짧은 취준 기간일 수도 있다. 나도 머리로는 독일에서 대학원 졸업 후 정규직 취업하는데 1년은 걸릴 것을 알고 있었고, 나보다 1년 먼저 졸업한 동기들도 1년이 넘어서 취업한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있자고 생각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 해외에서 취업준비를 한다는 것은 상황이 좀 특수한데, 일단 부모님과 살지 않기 때문에 수입은 없는 상태에서 각종 월세, 공과금, 식비, 생활비가 켜켜이 쌓여간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에서 미니잡 알바라도 구하기 쉽지 않았고, 나같은 경우엔 베이비시팅으로 근근히 용돈벌이를 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부모님께 계속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에서 우리집의 구멍난 장독대가 된 기분이었다. 그것도 이미 학비에 돈도 많이 들어간 고학력 구멍난 장독대. 이십대 초반에 대학에 다니면서도 일해서 한 2-3년간 완전히 경제적 독립을 이룬 바가 있었기에 다시 부모님께 생활비로 돈을 벌리는데에 대한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국제 백수였고, 독일 이민국은 그래도 독일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내게 1년 6개월이라는 구직 비자를 내 주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꽤나 후한 구직 기간이긴 하지만 (덴마크에선 덴마크 대학을 졸업하면 6개월 구직 비자를 준다) '그 기간내에 취업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 성인 인생 전체를 유럽에서 살았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나? 한국엔 쌓아놓은 인맥도 없고 내가 나온 대학교 아는 사람도 없을텐데? 비자가 끝나갈 때 까지 취업을 못하면 부랴부랴 아직 계획에도 없는 박사에 지원해야하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게다가, 더욱 더 내 멘탈을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넣는 족족 서류에서 광탈했다는 것이다. 좀 재수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한번도 인생에서 서류에서 그렇게 광탈해본 적이 없었다. (예전엔 페이가 적은 인턴이나 학생 포지션에만 지원해봤으니까. 그래도 학생때도 정규직 포지션에서 두어번 서류 통과해본 적은 있었는데...) 먼저 취업한 선배들도 나보고 처음 졸업하고 정규직 취업이 제일 어렵다고, 원래 그런거라고 위로해줬다. 회사 입장에서도 갓 학교 졸업한 사람을 풀타임 월급으로 채용하기 망설여지니까. 그래도 내가 풀타임으로만 2년 반을 네 군데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광탈한다니 좀 충격적이었다. 좀 구체적인 수치로 얼마나 서류를 광탈했는지 말하자면, 47군데 지원해서 5군데에서 면접 오퍼가 왔고, 처음 구직을 시작한 6월부터 10월 말까지 단 한군데에서도 서류 합격을 하지 못했다. (구직 전략을 수정하고 면접 오퍼가 오기 시작했는데, 자세히 어떻게 전략을 바꿨는지 이후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러니까 지원한 90%의 회사에서는 서류 광탈을 한 것이다.

효과적이었던 전략을 풀기 전에 일단 나의 구직 프로필부터 밝히도록 하겠다. 나는 경상/사회과학 계열에서 석사 학위 2개를 가지고 있고, 대학원에서 통계학과 데이터 사이언스 위주로 공부를 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취업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외국인 유색인종 여성이기에 대기업의 조직 문화보다는 스타트업 조직 문화가 더 잘 맞을 것 같아 베를린 스타트업을 주요 목표로 구직활동을 했다. 

 

기술직이기에, 서류 합격한 회사의 절반 정도가 기술 면접을 봤다. 말인 즉슨, 데이터셋을 주고, 분석 과제를 준 후 15-20분 가량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것을 요구받았다. 나같은 경우엔 데이터 분석에 며칠을 꼬박 쏟아 부었다. 그러나 기술직이 아니더라도 유럽에서 Communication등의 분야에서도 면접 과정 중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것을 요구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니 이 점을 참고하자. 

 

(1) 내가 원하는 구인 포스팅들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스킬셋을 분석

내가 희망한 직종은 개발직이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 알고 모르고가 취업에서 당락의 여부를 많이 결정한다. 그러나 굳이 개발직이 아니더라도 마케팅이던, HR이던, 디자인이던 소프트웨어 하나 이력서에 있고 없고 차이가 서류 당락에 큰 요소인 것 같다.

 

나는 주로 링크드인에서 구직을 했는데, 잡 플랫폼에서 내가 '꿈의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는 공고를 몇개 추려보고 주로 그 공고들에서 공통적으로 원하는 기술적 스펙이 무엇인지, 그 중에서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적 스펙은 무엇이고 아직 가지지 못한 기술은 무엇인지 파악해봤다. 그리고 차근차근, CourseraUdemy 등에서 그 기술적 스펙을 가르치는 온라인 코스를 찾아 스펙을 업데이트 하기 시작했다. 웬만한 소프트웨어 코스는 짧으면 1주에서 길면 한달이면 끝낼 수 있고, 이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쓸줄 아는 소프트웨어 하나 이력서에 업데이트 하는 것이 서류 합격에 큰 도움이 된다.

 

(2) 내가 원하는 직종에 있는 친구 / 선배들과 커피나 점심 먹으며 조언 구하기 

이 방법은 내가 4개월의 서류 광탈 후 첫 면접을 따게 된 방법이다. 링크드인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 중 현재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내 구직 조언 좀 구한다며 내가 회사 근처로 갈테니 커피나 점심을 먹자고 했다. 친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별로 안친했던 동기에게까지 메시지를 보냈다. (전남친의 전여친에게까지. 알고보니 그녀도 ADHD까지 있어서 엄청 친해졌다.) 자존심은 구직에서 별로 도움이 안되는 감정이니 잠시 접어서 넣어두자. 거절당할까봐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계속 서류에서도 거절당하리라 생각했다.

 

이렇게 먼저 동종 직업에 취업한 선배들에게 업계 동향도 좀 듣고, 내 프로필에 대한 객관적인 피드백도 부탁하자. 나같은 경우엔 이렇게 요청해서 만난 선배들이 어떤 소프트웨어 배워두면 좋을지, 그리고 이력서나 링크드인 프로필은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줬다. 어떤 회사는 업무 환경이 나쁘고 좋은지에 대한 꿀팁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 선배들 회사에도 자리가 나면 관심있으니 알려달라고 어필을 해보자. 실제로 먼저 졸업해서 취업한 한 동기가 내게 자기 회사 HR과 연결을 해줬었고, 그 회사랑 최종 면접까지 갔었다. 공정해 보이는 유럽에서도 상당히 많은 채용이 학연과 혈연으로 이루어진다. 

 

(3) 충분히 자격이 있는데도 서류 합격을 못한다면 이력서 대폭 수정하기

내가 볼때는 구인 공고에서 원하는 스킬셋을 100% 충족하고 있는데 자꾸 서류에서 떨어진다면, HR이 내 지원서로부터 내가 어떤 스킬셋을 가지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을 하지 못해서일 확률이 크다. 예를 들어서, 구인 공고에 Econometric Analysis 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고 했는데 내 이력서 프로젝트들 중 하나에 Time-Series Analysis가 있다고 해보자. HR 직원이 계량경제학 수업을 듣지 않은 한 Time-Series Analysis가 Econometric Analysis의 일부임을 알 수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Econometrics Analysis를 할 수 있는지 내 서류만 보고는 파악이 안될 수도 있다. 내가 가고싶을만큼 좋은 회사의 HR들은 정말 수많은 지원서들을 읽어보고 추려내야하고, 사람이 그러다보면 그냥 빨리 키워드만 찾아서 선별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아니라 AI가 서류를 추리는 회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구인 공고에 나온 키워드를 최대한 똑같이 맞춰서 이력서를 제출하도록 하자. 

 

또한, 나처럼 전공명과 지원 포지션이 딱 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이력서를 그 포지션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내가 4개월동안 모든 서류에서 광탈한 이유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의 경력도 없었거니와 전공명도 데이터사이언스가 아니니 회사들 입장에서는 '얘가 이것 저것 막 지원해보는구나'라는 인상을 받아서였던것 같다. 물론 Cover Letter에 내 데이터에 대한 열정을 줄줄 써서 보냈지만, 이력서 제대로 읽을 시간도 없는 회사들에서는 내가 Cover Letter에 쓴 내용 읽어보지도 않았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래서 어느날 한번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선배의 피드백을 받아 이력서 헤드라인부터 "Data Scientist with an Interdisciplinary Training"으로 바꿨고, 보통 이력서들처럼 경력이 맨 위로 올라오는게 아니라 데이터 관련 프로젝트들과 기술 스펙을 맨 위로 올렸다. 이후 확실히 서류 통과율이 높아졌다. 

 

(4) 아직 학생이라면 내가 재학 중 희망하는 직종 학생 어시턴트나 인턴으로 입사하기 

내가 7년간 유럽에서 구직활동을 해본 결과, 학점보다 인턴십 경력이 5배는 중요하다. 대형 컨설팅이나 대기업을 목표로 한다면, 성적표를 요구하는 곳도 조금은 있다. 그러나 90%의 회사는 한번도 성적표나 학점을 요구한 적이 없다. 그 말인 즉슨, 대부분의 회사들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고, 관련 경력을 얼마나 쌓았냐에만 관심이 있다.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아무리 명문대를 나와도 인턴십 경력조차 없는 애 뽑아서 이것 저것 가르칠 리소스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인턴십 경력이라도 있는게 정규직 채용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 주니어 포지션이라도 'first experience in...' 을 채용 조건으로 써 놓은 곳이 정말 많다. 

 

그러니, 아직 학생이라면, 경제적으로 아쉬울게 없더라도 건강과 체력이 허락 하는 한 졸업 전에 학생 포지션이나 인턴십으로 이미 경력을 쌓아놓기를 추천한다. 이미 졸업을 하고 난 뒤엔 인턴십을 하고 싶어도 독일에선 법적으로 재학중인 학생만 뽑을 수 있는 포지션이 많기 때문에 인턴십에서도 줄줄이 낙방할 수 있다. (내 얘기~~) 1-2개월이라도 이력서에 관련 이력 한 줄 있고 없고가 정규직 채용에 엄청난 영향이 있다. 나 역시 계속 서류 광탈하다가 결국 한국에 잠깐 돌아와 1개월 해당 직함 인턴십 했을 뿐이었는데 바로 서류에 계속 합격하기 시작하고 결국 최종 합격을 했다. 그것도 주니어 포지션이 아니라 미드레벨 포지션으로.

 

(5) 독어는 꼭 필요할까? 

베를린 스타트업을 목표로 한다면 영어만 잘해도 충분히 취업은 된다. 단, 영어라도 정말 프로페셔널하고 편하게 구사해야한다. 나도 취업 준비 기간동안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에 독일어 C1 급수도 따 놓았지만 대부분 내가 지원했던 스타트업들에서 내 독어 실력엔 1도 관심이 없었고, 독일 대기업들도 데이터 사이언스나 개발팀은 외국인들로 구성해놓은 경우가 많아서 팀내에서는 독어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내가 합격한 베를린 스타트업은 임원들도 독어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베를린 스타트업 취업이라는 관점에서만 생각한다면, 토나오게 어려운 독일어 배울 시간에 다른 소프트웨어나 프로젝트 역량 계발하는게 훨씬 효율은 좋을 것 같다.

 

물론 독어를 잘하면 구직은 물론, 취업하고 나서도 독어 클라이언트 대상 어카운트나 미팅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지니 기회는 넓어진다. 독일에서 살면서 독어를 잘하면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니 스타트업 취업 관점에서만 보면 독어 굳이 잘 하지 못해도 될 지언정,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어학 코스 지원을 해주니 취업 후엔 성실히 어학을 쌓아두는게 좋다.


나는 '취업 준비'라는 말이 참 싫었다. 이미 대학에 비싼 등록금 내고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훈련되었으면 그 외 회사에서 필요한 기술은 회사에서 돈 주고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회사에서 그런 생각을 알아줄 리는 만무하다. 일단은 내가 생계와 커리어가 아쉬운 입장이고, 이왕 내가 앞으로 내 인생의 몇년을 바칠 커리어라면 적극적으로 내 역량을 계발해야지 어쩌겠나. 그리고 역량 계발이 재밌지가 않은 분야라면 어쩌면, 그게 내 분야가 아니라는 뜻일수도 있겠다. 

 

나는 인턴십과 기술 면접 등의 취업 준비 과정을 통해서 내가 진짜 데이터 사이언스를 그저 밥벌이 수단 이상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근 후 일하는걸 극혐하는 내가 순전히 내가 궁금해서 이런 저런 모델링의 장단점을 찾아서 읽어보고, 잠들기 전에 애인 생각하듯이 이런 저런 코딩 방법 생각해 보면서 가능한 오류는 뭔지 생각해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취업 활동에 더 열정이 생긴것 같다. 

 

모든 취업 준비생들이 그렇겠지만, 해외 취업, 정말 쉽지 않다. 나와 다른 문화에서 불확실한 비자와 거주 조건을 이겨내며 생활하기는 여러모로 많이 힘든 경험이다. 아무리 취업 과정에서 내 자존감이 자꾸 후려쳐지더라도, 나는 노동 시장에서의 성과와 상관 없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기억하고 매일 매일 취업과 관계 없이 나를 위한 무언가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 취업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인생의 궁극적 목적 그 자체가 아니니까. 내가 최근까지 했던 고생과 비슷한 고생을 지금 하고 계신 분들이 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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