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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라이프

베를린에서 힙스터들과 김장 담그기

by 벨리너린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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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이전의 추억을 포스팅으로 작성한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나는 한국을 떠나면 김장을 담그고 전을 부치는 등의 가족 가사노동에서 해방이 될줄 알았다. 이렇게 말하면 한국에서 가족들이 일을 엄청 시킨것 같지만, 사실 모든 친척이 “쟤는 손발이 굼뜬애”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닥 시키시지도 않았었다. 결론적으론 한국에서조차 내 손으로 김장을 담가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얘기다.

 

베를린에 오기 전 북유럽에선 4년동안 한식재료를 구하기 여의치 않아 김치도 안먹었고, 베를린에 오고 나서야 가끔 아시아 식료품점에서 종갓집 맛김치를 사다먹은 정도였다.

 

그런데 베를린에 와 보니, 김치는 엄청난 힙스터 트렌드였다. 베를린 힙스터들이 좋아하는 것은 테크노 클럽과 검정색 터틀넥, 그리고 몬스테라 뿐만이 아니라 집에서 각종 발효음식 (콤부차, 사워도우, 김치 등)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특히 진정성에 목을 매는 백인 힙스터들은 자기가 만드는 김치에 한국인이 “이것은 진정한 김치”라는 어떠한 인증마크같은 정당성을 부여해주길 바랬다. 그리고 김치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한국인 친구로 내가 낙점됐다.

 

사건의 발단은 대학원에서 논문도 같이 쓰고 테크노 파티도 같이 가던 독일인 친구 L이었다. 그는 노이쾰른에서 직접 정원에 토마토, 고추, 배추 등을 기르는 도시 농부이기도 했고, 배추가 다 자랐으니 김치를 담그고 싶다는 눈치를 내비쳤다. (사실 그는 이미 여자친구와 한번 김치 만들기 워크샵에 참여했으므로 나보다 김장 경험이 많았다.)

 

나는 해본적도 없고 자신도 없었지만 왠지 독일인도 직접 담가먹는 김치를 한국인인 내가 한번도 안 담가봤다는 사실이 좀 창피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배추를 수확할 시기에 L과 그의 여자친구, 나, 그리고 또 다른 파키스탄 출신 동기 A가 모여 김장을 담그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손이 느리다는 사실은 금세 모두에게 드러나게 되었고 ㅋㅋ 다른 애들이 마늘 몇개를 까고 생강 몇개를 다지는 동안 나는 겨우 한개를 까고 다지며 뒤쳐지게 되었다. 결국 나의 쓸모는 한국에 있는 엄마 찬스 (카톡해서 물어보기)로만 겨우 증명이 되었다. 겉절이 하면서 옆에서 좀 많이 주워먹고. (생각보다 너무 맛있더라..) 그나마 한국인인 나의 “맛있다”는 말에 김치의 진정성은 입증이 되는듯 했다.

함께 갓 만든 겉절이를 소중히 들고있는 L
우리가 생산해낸 베를린표 김치들

그런데 김장의 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함께 참여한 파키스탄 동기 A가 집에 신김치가 있는데 (베를린 젊은이들이라면 이제 냉장고에 신김치 한병 쯤은 있는것인가?) 함께 요리해 먹자며 가져왔다. 그래서 나는 김장에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한 미안함에 김치 부침개를 부쳐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김장이 다 끝나고 전까지 부치고 보니 이미 시간은 새벽 1시였다.

 

맙소사, 베를린 까지 와서 새벽까지 김치를 담그고 전을 부칠줄이야. 시어머니보다 무서운 베를린 힙스터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나도 재밌었고, 또 친구들이 먼저 내 전통에 함께하고 싶다고 손을 내밀어서 기뻤다. 생각보다 많은 또래 한국인들이 해외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처음 김장을 담가보는 것 같다. 처음 외국에 나왔을 땐 현지 적응에 정신이 없어 한국적인 것들을 멀리했었는데, 이제 많이 적응이 되고 나니 오히려 내 뿌리를 더 명확히 하고싶은것 같다. 해외생활 초반엔 한국음식이 그닥 그립지 않았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요리해줄때도 잡채, 비빔밥, 찜닭, 닭갈비 등 외식메뉴 위주였는데 요즘엔 닭개장, 청국장, 고사리 나물 같은 구수한 한식 가정식이 너무 그리워서 점점 더 도전해보고 싶다. 사실 그 음식을 해주던 엄마가 더 그리운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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