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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라이프

독일에서 닭개장 (닭계장) 보양식 만들기

by 벨리너린 202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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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유학 생활과 자취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고된 학업은 물론이고 집안 청소며 끼니도 다 내가 스스로 해 내야 하는데, 학업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어렵지만 내 스스로에게 좋은 생활 환경을 만들어주고 양질의 음식을 잘 챙겨 먹이는건 아주 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러다보니 체력은 점점 만성적으로 나빠지고, 체력이 나빠지니 좋은 음식을 해먹을 힘과 시간은 더더욱 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게 된다. 체력이 그렇게 되면 학업이나 생업에도 지장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18살, 처음 혼자 유럽에서 자취를 시작했을 땐 영양이나 요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음식을 해먹는다 해도 고작 닭갈비, 제육볶음과 같은 외식 메뉴나 가끔 해먹고 대부분 파스타, 빵 쪼가리로 끼니를 때웠었다. 한국 집에서 라면이나 즉석 식품을 많이 보내줬었고 라면도 끼니로 많이 먹었었던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왔던 시간이 축적되면서 건강은 해가 갈수록 약해졌다. 이제 어느덧 만으로도 20대 중반이 되니 한국에서 엄마가 해주던 음식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신선한 재료를 정성과 시간을 들여 해준 음식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 음식들이 사람이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아가기에 얼마나 필요한 양분이었는지 시린 뼛속 깊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부턴 한국에 있는 엄마를 좀 귀찮게 해서라도 엄마가 해주던 집밥 레시피를 많이 물어보기 시작했다. 몸 보신도 보신이지만, 코로나로 한국에 가지 못하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엄마가 해줬던 레시피라도 그대로 만들어 먹으면서 연결감을 느끼고자 했던 것 같다. 날씨가 차가워지니까 간절히 생각나던 메뉴는 엄마가 겨울이면 한솥 끓여주던 진한 국물의 닭개장. (닭계장이나 닭곰탕으로 부르기도 하더라.) 엄마가 어려워서 너는 못해먹는다고 몇번 만류했는데도 이번엔 꼬치꼬치 물어봐서 레시피를 받아냈다. 

본격적인 레시피에 앞서, 고사리를 넣고 끓일거면 먼저 건고사리 손질부터 해놔야 한다. 적어도 전날부터는 해야하는 작업인데 (나도 생전 처음 해봤다) 하룻밤새 건고사리를 물에 불려놓고 다음날 끓는 물에 2-30분정도 데치고 그 끓은 물에 그대로 5시간을 다시 불려놓고 찬물로 깨끗이 씻어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고사리는 독성이 있어서 이렇게 독성을 빼는 작업을 해줘야한다.) 사실 이 고사리가 독일에서 구하기 제일 어려운 재료인데, 나는 건고사리를 한국에서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육개장이나 닭개장에 고사리가 빠지면 무슨 매력인가 싶지만, 정 독일에서 고사리를 구하기 어려우면 스킵하고 숙주만 넣어도 꽤 괜찮다. (예전에 파독 광부들이 독일 자연에서 고사리 캐먹다가 야생동물 먹을 음식을 훔친다고 체포된적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있다. 그 맛있는 걸 왜 안먹을까...) 

 

 

재료: 닭 한마리, 양파 3개, 대파 2개, 통깨, 국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고사리, 숙주

닭개장 레시피 첫 단계

1. 먼저 양파 2알 껍질을 벗기고 대파 한대를 끝 부분을 잘라 솥에 넣는다. 생닭 역시 깨끗이 씻어 솥에 넣고, 그 위에 통깨를 뿌린다. 모든 재료가 잠길 정도로 물을 넣고 센 불에 팔팔 50분-1시간 정도 끓인다. 

(사실 고기를 씻냐 안씻냐는 한국과 해외에서 평이 갈리는 문제이다. 고기 씻으면서 튀는 물이 주변 주방기구로 튀어서 세균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에선 그냥 씻지 않고 가열해서 균을 죽이는 것이 권고이지만, 한식 요리에서는 고기 냄새를 최대한 안나게 하는 게 관건이기 때문에 깨끗이 씻으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선 싱크대가 유럽 가정집 싱크대의 보통 2-3배 사이즈기 때문에 싱크대 내부에서 다른 주방 용품으로 물 튀게 하지 않고 씻는게 가능하지만 유럽 가정집에서는 사방 팔방으로 튀어나가기 때문에 주위 전체를 주방세제로 닦아내는 것도 큰 일이다...)

 

처음으로 해보는 거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유기농 마켓에서 1.4kg 짜리 생닭을 샀는데 무려 22유로였다. 유기농 생닭이 보양식으로는 진짜 맛있고 퀄리티가 좋긴 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앞으로는 유기농 냉동닭이나 그냥 비유기농 생닭으로 해먹을것 같기도 하다. 닭 한마리 전체를 조리해보는건 처음이라 혹시 내장 손질을 내가 해야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이도 미리 깨끗이 손질되어 나온 닭이었다. 

 

닭개장 레시피 두번째 단계

2. 닭이 충분히 익었으면 모든 재료를 건져낸다. 익은 닭을 찬물에 다시 씻어 온도를 좀 내린 다음, 모든 살을 뼈에서 발라서 찢어준다. (온도가 충분히 안내려가면 손으로 찢으면서 화상 입을 수 있으니 주의. 이 작업만 해도 개인적으로 한시간정도 걸렸다.) 그 다음 국간장 3스푼, 고춧가루 4스푼, 참기름에 발골해낸 닭 살을 무친다. (큰 닭을 사니 살코기가 굉장히 많이 나와서 집에 그만한 사이즈의 그릇이 없어 Wok에나 무칠 수 있었다.)

 

닭개장 레시피 세번째 단계

3. 고사리, 숙주, 채썬 양파, 어슷썰기한 대파와 전단계에서 무쳐놓은 닭을 아까 우려낸 국물에 다시 넣고 중불에 40분 더 끓여낸다. (숙주 사러 나가다가 열쇠를 집에 두고 나와서 열쇠집 아저씨 부르느라 결국 숙주를 넣지 못했다.)

 

닭개장 레시피 완성!

4. 충분히 끓으면 간을 보고 소금으로 마지막 간을 맞춘다.

 

엄마가 해주던 맛의 90%는 따라한것 같아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나머지 10%는 아직도 엄마를 필요로 하는 인간이란걸 상기시키기 위해 남겨두도록 한다.)

 

태어나서 내가 만들어본 음식 중 가장 건강한 음식인 것 같다. 조리 과정이 오래 걸리고 고사리 조달을 한국에서 해와야해서 자주 해먹지는 못하겠지만 한번 한솥 크게 끓여놓고 2-3인분 정도 소분 냉동 해둬서 아플때나 기력 없을때마다 해동해서 먹기 딱이다. 오늘의 기운 있는 내가 미래의 아픈 나를 위한 투자이자 선물이랄까. 정말 보람찬 요리였다. 

 

나는 고사리 불리는 준비과정 제외하고 생닭 끓이는 시점부터 한 서너시간 후에야 요리를 완성했는데, 물론 내가 손이 워낙 빠르지 못한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퇴근해서 배고플때 바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는 아니고, 주말에 시간 많을때 잔뜩 끓여놓기 좋은 메뉴같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리 과정이 간단한건 아니지만 

 

요즘 한식대첩 고수외전을 정주행하고있는데, 보면서 참 한국 음식은 재료도 다양하고 신선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물론 그만큼 만드는 이의 수고와 희생이 들어간 음식이고, 일하는 사람이 만들어 먹기에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소위 말하는 원기 회복에는 한국음식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선 쉽게 자주 먹던 신선한 해산물도 베를린에선 자전거 타고 15분은 나가야 사올 수 있고, 가격도 훨씬 비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바쁠땐 빵조가리나 파스타로 끼니를 때우지만, 가끔은 내 몸을 위해 내가 정성들여 끓인 보양식을 선물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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