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를린 라이프

독일에서 성인 ADHD 진단 받기

by 벨리너린 2020. 12. 9.
728x90

때는 7월이었다. 나는 벌써 몇번째 스토브에 행주를 삶다가 깜빡 잊고 행주를 태워먹었고, 벌써 몇 번째 내 당시 룸메이트가 그걸 발견했었다. 룸메이트는, 당연히, 몇 번이나 내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히 실망하고 안전에 대해서 극도로 불안해했다. 나 역시, 당연히, 몇 번이나 내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히 좌절하고 극도로 죄책감을 느꼈다. 

 

그 당시 이 문제를 고치기 위해 이미 몇 개의 시도를 해봤었다. 스토브 옆에 "꺼져 있나 확인"이라고 메모를 써붙여 놓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메모는 내게 그저 벽의 일부가 되어 효력을 상실했다. 뭔가 불에 올려 놓을 때 마다 타이머를 설정해놓기로 룸메이트와 약속했지만 타이머를 설정하려고 핸드폰을 든 순간 다른 알림에 정신이 팔려 타이머를 설정하기를 까먹고 스마트폰의 늪에 빠져 다시 태워먹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는 부엌에 갈땐 핸드폰을 들고 가서 뭔가 불에 올라가면 부엌을 떠나지 않기로 약속했었고, 당연히 나는 부엌에 갈때마다 핸드폰을 가져가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고 또 정말로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내 다리가 부엌을 떠나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토브를 끄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내게는 뭔가 물리적인 불가능처럼 느껴졌고, 룸메의 속은 내가 태워먹은 행주들만큼이나 까맣게 타들어갔다. 나 역시 이렇게 간단한 것을 자꾸 잊어서 내게 소중한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고, 내 자존감 역시 내려갔다. 

 

그러던 와중, 정신과 의사 형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성인 ADHD 진단기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내가 그 진단기준 모두에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며칠동안 나는 ADHD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평생 자타공인 덜렁이로 살아왔고, 가족들과도 내가 ADHD같이 행동한다고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많다. 하지만 나는 여자아이였고,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종종 방해되는 행동을 보여도 부모님도 선생님도 내게 ADHD가 있을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것 같다. (선생님이 부모님께 내가 수업중에 쓸데 없는 소리를 한다고 전화한 적은 몇번 있었다.)

 

며칠 후, 새로 만난 일본인 친구 Y와 케잌을 먹다가 그녀에게 "나, ADHD인것 같아." 라고 했더니 그녀가 "어, 나돈데!" 라고 했다. 그녀는 이미 19살때 병식이 생겨 스스로 정신과에 찾아가서 진단을 받았고, 그 후 약물치료도 해봤지만 과각성된 기분이 싫어서 그만 두었고 지금은 행동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조언으로 베를린에서 1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있는 ADHD 전문 정신건강의학과를 추천받았고, 곧바로 ADHD 진단 예약 이메일을 썼다.

 

유명한 병원이라서 그런지, 이메일을 쓴지 한달만에 답장이 왔다. "오늘 오전 11시 반 아니면 11월달에나 가능한데, 올 수 있어요?"라고. 때는 8월 초였고, 나는 오전 10시 반에 남자친구와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제 시간에 다른 도시로 기차타고 갈 순 없었어서 결국 3개월 뒤에 예약일에 응했다. (일본인 친구 Y에 의하면 내게 예약을 내어준것만으로도 감사한거라고, 자기는 아예 예약도 못했다고 한다. 다른 독일인 친구 V 역시 최근에 내게 이 병원을 추천 받고 예약 받으려고 이메일을 보냈는데 2021년 중순까지 예약이 꽉 찼다고 다른 병원을 추천받았다고 한다.) 

 

11월,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예약일이 되었다.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니 리셉셔니스트가 이런 말을 했다. "전화했는데 안받으시더라고요. 안타깝게도 오늘 의사 선생님이 아프셔서 못나왔어요. 다음주에 온라인 비대면 진료로 예약 변경해 드릴게요." 

 

ㅎㅎㅎㅎㅎ

 

독일이 뭐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집에 갔다. 의사도 사람인데, 사람이 아프면 어쩔 수 없지. (ADHD 스크린 중독 때문에 아침 저녁에 스마트폰부터 확인하는 습관 없애려고 잘 시간부터 다음날 오전 모닝 루틴 끝날 때 까지 비행기모드를 켜 놓는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못받았던 것 같다.)

 

2주 후 예약일이 되었고, 비대면 진료를 위해 의사 선생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약시간 15분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뭔가 이상해서 병원에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저희가 방금 확인해 봤는데 오늘도 의사 선생님이 아프셔서 못나오셨네요. 저희가 다시 전화 걸어서 다시 예약 잡아드릴게요." 

 

이번엔 병원측에서 미리 통보도 없이 노쇼였다 ㅋㅋㅋㅋㅋㅋㅋ

짜증이 안났던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의사도 사람인데 2주 쉬어도 여전히 아플 때도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2n년을 ADHD인채로 살아왔는데 몇 주 좀 더 걸리면 어떤가 라는 생각과 함께.

 

그 다음주 월요일 아침, 나는 일찍부터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고 (다행히 전날 비행기모드 설정해두는걸 깜빡했다) 당일 오후에 진료 가능하냐고 해서 가능하다고 했다. 

 

비대면으로 병원측에서 보내준 링크를 통해 접속했고, 의사는 젊은 전공의인것 같았다. 의사는 계속 예약을 변경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했다. ADHD 진단을 받고싶다고 하자, 다른 병력과 가족력을 확인하고, ADHD와 증상이 유사할 수 있는 다른 병을 rule-out하기 위한 질문 몇가지와, ADHD 진단을 위해 사용되는 다른 질문 몇가지를 물어봤다. 이전에 ADHD 진단을 받으러 갈때 유년기와 청소년기, 성인기 인생 단계에 걸쳐서 학교, 직장, 일상생활 등 다른 환경에서 나타난 증상들을 적어가면 좋다고 해서 이걸 정리해놓은 문서도 있다고 하자 의사가 "그거 이메일로 보내주면 우리 파일에 보관해 놓을게요. 근데 일단 필요한 정보는 이미 거의 다 갖고 있어요."라고 했다. "제 생각에도 환자분은 교과서적 ADHD인것 같네요. ADHD 치료 약물의 관리가 엄격하기 때문에 약을 처방하려면 검사지를 작성해서 보내야하지만 그건 행정적인 절차상 필요일 뿐이고, 환자분은 ADHD가 아닐 확률이 굉장히 적은 것 같아요."  

 

교과서적 ADHD라는 말에 눈물이 날것 같았지만 참았다. 내가 여태까지 했던 실수들, 사람들에게 끼쳤던 민폐들, 그리고 내가 게으르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나쁜 애라서 그렇다는 오해. 날 키우면서 유난히 힘들어했던 엄마. 나와 자라면서 힘들었을 형제. 이 모든 것들이 생각나면서, 이젠 이게 내가 나쁜 애라서 그런게 아니라 내가 좀 다른 뇌를 타고 나서라는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여태까지 서로 몰라서 힘들어했던 가족과 지인들에게 미안했지만, 앞으로 더이상 이유도 모르고 죄책감만 느끼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역시 들었다. 의사는 검사지 작성 결과를 같이 매기는 다음 진료일을 2주 후에 예약해주었고, 더 빨리 다음 진료를 잡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곁들였다. 

 

대면진료였다면 그 자리에서 검사지를 채워서 진단을 받고 처방도 받았겠지만, 비대면진료였기 때문에 병원에서 검사지를 우편으로 보내줬다. 우편 요금 1.7유로를 따로 병원측에 송금해야 했다. 검사지는 하루만에 금방 왔다. 진료는 영어로 했는데 검사지는 독일어로 와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어찌 저찌 사전의 도움을 받아서 체크해나갔다. 진단을 위해서 사실 유년기부터 나를 봐왔던 친지가 작성해야할 항목도 있는데, 가족 중 독어구사자가 없어서 나는 그부분은 스킵했다. 또 성인 ADHD 증상 검사 항목 중 파트너가 작성해야하는 부분도 있어서 남자친구가 도와줬다. (검사지 작성 내내 내 옆에 있었는데 본인도 ADHD인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내내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ㅋ 우리가 서로를 여태까지 잘 이해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둘 다 ADHD여서가 아닐까.)

 

사실 정말 놀랐던건, ADHD 검사지 뿐만이 아니라 아스퍼거 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중에 경증에 속하는 장애) 검사지까지 같이 왔다는 것이다. 난 내가 자폐일거라곤 진지하게 생각해본적 없는데 (엄마는 몇번 내가 좀 자폐끼가 있다고 한 적이 있었고 난 그걸 한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사가 초진에서 "다중언어 구사자시라고요?" "석사 학위가 두개나 있으시다고요?"라고 되묻고 받아 적는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의사가 보기에도 내게 자폐가 있을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많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다중언어를 구사하거나 많은 대학원 학위를 가지고 있다.) 더 놀랐던건 "내가 무슨 자폐야~"하면서 검사지를 작성했는데 의외로 해당하는 증상이 ADHD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많았다. (생각해보니 유치원때 자동차 번호판을 외우진 않았지만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읽고 그녀가 거쳐간 유럽 도시들과 유럽의 나치 강제수용소 이름을 줄줄이 외웠었다. 어린애치고 좀 음침했네 나... 독일에 올 운명이었나보다.) 그래서 검사지를 작성한 후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니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고, 어렸을때 어른들이 영재라고 좋아했던 아이들 중 사실 자폐 스펙트럼이었던 아이들도 많다는걸 알게 되었다. 내가 자폐일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건 미디어에서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극히 한정적이어서가 아닐까. 알고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 기능도 하고 유머러스한, 주위에 있을법한 사람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ADHD와 아스퍼거는 겹치는 증상도 굉장히 많고 실제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 들 중 ADHD 유병률이 거의 절반까지도 보고된다고 한다.)

 

2주 후 바로 오늘, 다음 진료일이 되었고, 원래는 대면 진료로 예약되어 있었지만 담당 의사가 또 코로나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어서 다시 비대면 진료로 당일 아침에 바뀌었다. 검사지를 같이 채점하기에 앞서, 의사 선생님이 사실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은 오늘 자기가 안해줄거라고, 일단 성인 아스퍼거 진단은 비급여라 검사비도 400유로나 들고 자기는 아스퍼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진단을 해도 병원의 다른 전문가 선생님에게 따로 예약해야 되고, 그것도 엄청난 시간이 든다고 하셨다. 자폐는 진단을 받아도 따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럼 자폐 진단을 따로 안받아도 상관 없다고, 근데 아스퍼거 증후군 검사지는 왜 보낸건지 궁금하다고 물어봤다. "그냥 검사지 작성하시면서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가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서 보내드렸어요. 치료는 못해도 내 주변을 내가 새롭게 알게된 나 자신에 맞춰서 재정비 할 수 있잖아요. 사실 ADHD에도 완치는 없어요, 증상 조절을 위한 약물 치료가 있을 뿐이지." 이렇게 나는 내가 아스퍼거 증후군인지 아닌지 확답을 듣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굳이 진단받지 않고 계속 미스테리로 남겨둘 것 같다. 내가 좀 그런 성향이 있구나, 하는 자기 객관화를 좀 더 얻었달까. 

 

의사 선생님은 빠르게 내 ADHD 검사지를 채점해 나갔고 (역시 의대 나온 사람은 암산도 빠르구나...라며 감탄하고 있었다) 내게 "역시 예상대로 ADHD 점수가 아주 높으시군요. 환자분은 ADHD입니다."라고 확진을 내려주셨다. 난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서 "제가 높은 점수를 받은 시험이 하나 더 생겼네요."라고 했고 의사는 웃으면서 "ㅋㅋㅋ 잘했어요"라고 해줬다. (재수없게 들릴수도 있는 농담이지만 나름대로 과잉성취 컴플렉스와 자폐성향 자조적 개그였다. 어느 병원에 가던 의사를 웃기고픈 이상한 충동이 든다.) 내게 몇 가지의 약물치료 옵션을 설명해주고, 일단 메틸페니데이트 주성분의 메디키넷 5mg부터 시작하고 용량을 차츰 늘려나가기로 했다. "약물 치료의 목적은 조금 나아졌다고 느끼는게 아니라 드라마틱하게 나아졌다고 느끼는 거예요." 몇가지 초기에 있을수 있는 부작용과 복용 방법, 그리고 주의사항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각성제는 몸에 무리가 좀 있기 때문에 5일 복약하고 2일 휴약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처방전은 원본이 필요한데 우편으로 보내줄까, 직접 픽업할래? 하시길래 하루라도 빨리 약물 치료 효과가 궁금했기에 직접 픽업하러 간다고 했다. ADHD 치료제인 각성제는 심장에 무리를 줄수도 있어서 심장병있는 사람에게 치명적일수 있기에, 심장병력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집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심전도 검사도 받아오라고 진료 위탁서 (?) 도 끊어주셨다. 의사 선생님은 2주 후에 약물 치료 경과를 보고 용량을 늘릴지 결정하는 비대면진료 예약을 또 다시 잡아주셨다. 이렇게 해서 처음 예약 이메일을 보낸지 5개월만에 ADHD 진단을 받게 되었다. 

 

ADHD 약물 메니키넷 처방전. 드디어 처방전을 받게 되다니 참 감명깊었다.

결국 오후에 다시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디키넷 처방전과 심전도 검사 진료 위탁서를 받아왔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첫 복약을 할 수 있겠지! 라는 기대로 기차역에 있는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내밀었다. 그런데 허걱. "이 약은 재고가 없어서 따로 주문을 해야해요."라고 했다. 베를린 중앙역에 있는 큰 약국에 가면 사정은 다르지 않을까 해서 갔더니 거기도 재고가 없어서 주문을 해야한단다. 세번째 다른 약국에 갔는데도 재고가 없어서 주문하면 내일 오후 1시 이후에 집으로 직접 배달해 줄 수 있단다. (코로나 기간에 약국들이 특별 무료배송 서비스를 하는 것 같았다.) 의사가 특히 초기 적응기에는 꼭 아침에 복약을 하라고 해서 다음날 오후에 약을 받으면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그럼 내일 오후에 배달해달라고 했다. (ㅠㅠ 꼭 내일 먹고 싶었는데. 너무 오래 기다려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메디키넷 약국 영수증. 배송은 무료이다.

성인 ADHD약은 독일에서도 보험이 적용되어서 5유로 밖에 하지 않는다. 모든 검사 비용도 보험 적용을 받아서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검사지 우편으로 보내는 비용 1.7유로 + 첫 약값 5유로로 총 6.7유로밖에 되지 않는다. 좀 비싼 동네에서 케밥 한번 사먹는 금액이다. 이렇게 인생 처음으로 정신과 약을 처방받게 되었다. 

 

앞으로 약물 치료 경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약물 치료 이후 인생이 달라졌다는 친구도 있었고, 부작용 때문에 단약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사실 ADHD 증상 중 주의력 결핍이 주로 알려져있고, 또 ADHD 약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 되는 사례도 많아서 작업 능률 향상을 기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지금 이대로보다 그닥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자하는 욕구는 별로 없다. 지금의 내가 완벽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을 생산수단으로 인식하고 내 건강을 헤쳐가며 자기착취를 해왔던 세월이 길기 때문에 더 이상 나 자신에게 더 생산해내기를 요구하긴 싫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나에게 매일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러나 약물 치료로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더 나은 직장에 취직하고 더 높은 학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된 어른으로서 최소한의 위생과 안전을 지키며 사는게 더 이상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것이다. 행주를 태워먹어서 집에 불을 낼뻔하고, 툭하면 열쇠를 잃어버려서 열쇠 아저씨 문 따는데 돈이 들고, 전자기기를 잃어버리는건 물론이고 비행기도 놓치고, ATM에 현금인출을 하고 그대로 현금을 두고 나오고, 구직 면접에 지각을 하고, 밥해먹는게 어렵게 느껴져서 나 자신을 굶기고, 자전거를 타다가 주변 사물을 제대로 못봐서 몇번이나 사고를 낼뻔하고... 이 모든 너무나 일상적인 일들에 남들의 에너지가 5가 든다면 나에게는 50의 에너지가 드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해내지 않으면 나와 내 주변 사람의 안전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6개월 전만 해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나는 이제 나 자신을 발달장애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장애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마저 내가 가지고 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장애는 의학적인 진단이 아니라 사회적인 진단이다. 내 장애는 내가 뭔가를 근본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비장애인을 위해 설계된 세상에서 어려움을 느끼며 산다는 뜻인다. 예를 한국처럼 전자 도어록이 있고 가스불이 자동으로 꺼지는 타이머 스위치가 있는 나라에서의 나는 독일같이 열쇠를 가지고 다녀야하고 가스불 타이머가 없는 나라에서보다 덜 장애인이다. 반대로, 비교적 남들이 정신과에 가던 말던 신경을 안쓰는 독일같은 나라에서보다 한국처럼 정신과 가기를 꺼리고 장애라는 단어를 욕처럼 쓰는 나라에서 나는 더 장애인이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내 증상을 조절하는 치료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내 주변에 나를 장애인으로 만드는 장애물들을 차츰 차츰 제거해 나갈 것이다.

 

ADHD가 내 인생에 준 선물도 많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대로 태어나고 싶다. ADHD가 아니었으면 나는 여러 나라를 거쳐 지금 베를린에 와 있을까? 물론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던 어린 시절엔 오해도 많이 받아서 인간관계가 많이 힘들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를 나 자신 그대로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둔 지금은 너무도 감사하다. 

 

ADHD 진단 후, 제일 먼저 오빠한테 진단 소식을 알렸다. 현실 남매 관계가 으레 그렇듯 오빠하고 사실 연락을 그렇게 자주 하는건 아닌데, 부모님은 그래도 자식이니까 키웠겠지만, 자기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 ADHD인 나랑 자라는게 힘들었을것 같아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오빠는 내게 너는 내 동생이고 네가 설령 조현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괜찮다고 했다. 생각지도 않은 감동을 받았다. 그 다음엔 엄마에게 ADHD인 아이 키우느라고 고생 많으셨다고 했는데 엄마도 나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사랑한다고 했다. 아빠 역시 진단 과정 내내 응원을 해줬었다. 가족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수용적이었고, 이런 가족들의 사랑이 내 치료 과정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