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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라이프

독일에서 병원가기

by 벨리너린 2020.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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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3년을 거주하고 현지 보건 업계에서 1년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으나, 자세한 사항은 지역 병원이나 보험회사에 직접 문의해주세요. 

 

독일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았을 때의 사진

 

나는 독일의 의료 서비스의 질에 꽤 만족하며 사는 편이지만 그래도 독일에서 병원가는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의 의료 서비스가 워낙 질적인 면에서나 가격적인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비교적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일수도 있고, 의료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선 기다리는게 일상화가 되긴 한다. 나는 처음에 독일에서 병원에 가는 과정이 조금 복잡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나처럼 처음 독일에 와서 의료 시스템이 헷갈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포스팅을 써본다.

 

독일은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보장제도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세계대전 전후로 사회보장제도를 시작했으나, 독일에서는 이미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시작된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발전해온 것도 있지만, 또 그만큼 오랫동안 새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켜켜이 축적된 시스템의 복잡성 역시 가지고 있다. 

 

일단 이미 독일 비자를 신청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독일에선 의료 보험 가입이 의무이다. 그런데 한국처럼 국가가 운영하고 국민이 의료보험비를 접수하는 제도랑은 조금 다르고, 또 북유럽에서처럼 아예 따로 의료보험비를 접수하지 않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의료 시스템이랑은 또 다르다. 독일에서는 공보험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고 사보험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는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고, 공무원이라던가 연간 소득이 얼마 이상 되지 않는다던가 프리랜서라던가 하는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무조건 공보험에 가입해야한다. 공보험의 종류에는 TK (Techniker Krankenkasse), AOK, Barmer 등이 있는데 나는 처음 대학원 입학했을때 우리학교로 영업온 TK 아저씨가 웬만한 선택적 백신 접종 다 커버된다고 해서 TK 로 갔다. 사실 학생 공보험 납입료는 한달에 100유로 이상이고 학교를 졸업하고 구직자 신분이 되면 제대로된 수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200유로정도 내야한다. 독일 공보험은 절대 싸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보험 급여로 보장되는 부분도 많고 병원가면 보통 보험 카드만 긁으면 돈 한푼 안내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서비스 자체는 꽤나 만족한다. (한국이나 북유럽 살때는 보험에 포함되지 않았던 HPV 백신도 독일와서 공보험이 환급해줘서 맞았다.) 사실 학생일 경우 사보험이 훨씬 싸긴 하지만 (40유로대 상품도 있었다) 생각보다 보장 범위가 넓지 않고, 한번 사보험에 가입하면 다시는 공보험으로 돌아오기 힘들어진다고 해서 졸업후에도 독일에 오래 살고 싶었던 나로서는 학생으로서 좀 더 비쌌지만 공보험을 들었다. 졸업 후 사보험이 공보험보다 엄청 비싸질 수 있다. 만약 병원에서 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검사가 있으면 꼭 시행 전 미리 가격을 명시해주고 선택권을 주기 때문에 모르고 강매당하고 나오는 경우도 없었다.

 

자, 일단 보험 문제가 해결 됐으면 병원 가는 일이 남았다. 독일에서는 병원을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1) 가정의학과 주치의 (Hausarzt) ; 2) 전문의 (Ambulant) ; 3) 병원 (Krankenhaus)로 나눌 수 있다. 

 

1. 가정의학과 주치의 (Hausarzt) 방문하기 

 

신규 환자는 예약을 하고 가야하고, 기존 환자는 그냥 예약 없이 방문해도 괜찮은걸로 통상 알려져있는데 병원마다 다른 것 같다. 왜냐하면 예약 없이 방문하면 간호사들과 의사에게 굉장한 잔소리를 듣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가정의학과 방문하는걸 제일 별로 안좋아한다. 왜냐하면 가정의학과를 방문하는건 보통 큰 질병보다는 감기 등의 이유로 학교나 직장에 의사 진단서를 떼기 위한 목적으로 가는 것인데, 예약 잡고 가면 이틀은 기다려야하기 일쑤고 (오늘 전화한 가정의학과는 다음주에 예약을 잡아주었다) 그 때 즈음이면 증상의 양상은 달라지기 때문에 꾀병 취급을 받기도 한다. 또 예약 없이 당일에 무작정 방문하면 간호사들이 안 좋아하는건 물론이고 대기실에서 2-3시간 기다리는건 기본인데, 아픈데 아픈 사람들 사이에 껴서 기다리는 건 정말 고역이다. 사실 예약을 해도 2시간 기다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독일 의사들은 감기만 걸려도 병가 진단서는 1-2주씩 정말 잘 떼어주지만 의료적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안해준다. "Tee trinken (차 마시세요)" 는 독일 의사들이 맨날 하는 소리라서 외국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밈이 되어버렸을 지경이다. 또 한국에서와 같은 감기약은 처방 안해주지만 허벌 티 등 비급여 허브 제품은 잘 처방해주는데, 이건 약국가서 보면 기본 20유로는 넘는 경우가 많아서 처방해줘도 안먹을 때도 있다. (독일에서 급여 약은 5유로 이상 넘어갈수 없는걸로 알고있다.) 그래서 아프고 의사가 해주는건 없는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가정의학과에 가서 진단서를 떼오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다. (독일 가정의학과 주치의들이 의료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과잉 처방을 피하려고 하는 분위기이다. 또 한국이나 미국보다 눈치 안보고 1-2주씩 병가 낼 수 있는 환경도 한 몫 한다.) 

 

2. 전문의 (Ambulant) 방문하기 

 

독일에서 의료 서비스에 가장 만족하면서도 가장 외국인에게 장벽이 높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이름은 암뷸란트 (Ambulant)로 빨리 응급하게 환자를 돌봐줄 것 같지만 정말 그러기 쉽지 않다. 특히 신규 환자에게 장벽이 정말 높은데, 독일은 이미 그 전문의 병원에 등록된 환자는 비교적 예약을 빨리 잡아주지만 신규 환자는 3개월에서 6개월을 기다려야 예약을 잡을 수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예약 안받아주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독일에 새로 도착했다면, 나는 지금 당장 아프지 않더라도 내가 자주 아프고 한국에서 자주 방문하던 분야의 전문의 예약을 미리 걸어놓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성인 여성이라면 딱히 아프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자궁경부암 등 검진 받아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독일이나 북유럽에서는 외국인 포함 모든 20대 여성에게 1년에 한번씩 여성암 검진 받으라고 우편으로 알려준다) 독일에 오자마자 정기 검진을 명목으로 여성의학과 (Frauenarzt) 에 예약을 걸어두는 걸 추천한다. 또한 원래 불안장애나 우울증을 과거에 앓았던 경험이 있다면 지금 괜찮더라도 정신건강의학과에 예약을 걸어두는 것이 좋다. 정신 건강이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3-6개월을 기다리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더 절망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전 포스팅에서 다뤘듯이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가기 위해 5개월을 기다렸다.) 작년 여름에 한달 내내 눈이 찌를 듯이 아팠던 적이 있는데 안과에 가려고 보니 다음해까지 예약 받는 곳이 없어서 아예 포기했었다.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를 끼거나, 시력교정술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 역시 안과 예약을 미리 걸어두는걸 추천한다.

 

사실 이렇게 전문의에 신규 환자로 방문하기 어려운 문제점 때문에 진짜 병원 응급실 (Notaufnahme)가 필요 이상으로 붐비는 문제가 있다. 공황장애로 고생하던 대학원 동기가 있었는데 정신건강의학과에 예약하고 가려면 반년을 기다리라고 해서 응급실로 걸어 들어갔고 그 자리에서 병원의 소개로 보험 커버가 되는 테라피스트 예약을 받아내 바로 그 다음주부터 매주 상담심리 서비스를 받았었다. 물론 공황발작 같은 경우는 어느 나라에서나 응급실에 갈만한 상황이긴 하지만 전문의에게 가기 어려우니 사람들이 그렇게 응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응급실로 가는 경우가 많다. 

 

3. 종합병원 (Krankenhaus)

 

종합병원은 앞서 언급한 응급실 (Notaufnahme)로 들어가거나 가정의학과 주치의 (Hausarzt)또는 전문의 (Ambulant)의 소개 (Überweisung)을 받아야만 갈 수 있다. 한국처럼 대학병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유럽 살면서 1-2년에 한번은 응급실 방문할 일이 생기는데, 응급실에 가서도 공보험 카드만 긁고 한번도 돈을 지불하지 않고 집에 왔었다. 룸메이트가 응급실에 택시로 데려다준 적도 있고 응급 전화를 걸어 앰뷸런스 타고 간 적도 있었는데, 앰뷸런스 비용도 청구받지 않았다. (하지만 케바케로 응급상황이 아니었는데 앰뷸런스를 부르거나 앰뷸런스를 불렀는데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는 경우 앰뷸런스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고, 이 경우에도 공보험 적용 받으면 미국의 앰뷸런스 청구비 괴담과는 달리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라고 한다.) 유럽 전역에서 응급 (의료, 화재)시 전화번호는 112이다. 한국과는 좀 다르니 헷갈리지 않도록 하자. 독어가 어렵다고 하면 웬만하면 영어 오퍼레이터를 연결해 주더라. (안해주고 퉁명스럽게 대할때도 있는데 그땐 정말 서럽다.)

 

그리고 한번은 집에서 주말에 음식을 잘못 먹어 반나절동안 설사와 구토를 내리 하면서 구역질 때문에 물한모금 못먹은 적도 있었는데, 탈수가 걱정되어 응급 전화번호에 전화를 거니 네 나이면 반나절 그런다고 죽진 않겠지만 그래도 많이 아플것 같으니 왕진 의사를 보내주겠다고 해서 3-4시간만에 왕진 의사가 집까지 와서 구토가 멎는 주사를 놔 주었다. 이것도 공보험으로 무료였다. 집까지 왕진 의사가 오는 경험은 어디서도 없었어서 좀 감동이었다.

 

나는 병원에 직접 입원할 일은 전혀 없었고 한번 사고로 다리를 다쳐 수술하게된 친구 병문안을 가게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회사 회식후 자전거타고 집에 가다가 트램 철도에 끼어 다쳐서 산재 인정을 받아 산재 보험으로 엄청 좋은 꼭대기층 뷰를 맛보며 공짜 과일에 음료수가 거의 무제한 제공되는 독방을 썼었는데, 진짜 좋더라. (이건 당연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고 병원 입원 경험은 케바케인것 같다. 당연히 아플일이 없는 쪽이 훨씬 낫다.)


독일에서 병원을 가면 일단 성심성의껏 진료받는다는 인상은 대부분 받았다. 이 성심성의껏의 범주에 친절과 공감이 포함 될수도 안될수도 있지만, 사실 의료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친절까지 요구하는건 생각보다 열악하고 피곤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정당한 요구는 아닌것 같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에겐 좀 장벽이 느껴질 수 있고, 시스템 자체가 좀 헷갈릴 수도 있다. 또한 학생이나 구직자 신분에서 공보험료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보험을 가진 입장으로서는, 신규 환자의 장벽을 뚫고 나면 꽤 좋은 트레이닝을 받은 의사들에게 꽤 만족할만한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독일에서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길 바라지만, 살아가면서 의료 서비스를 받는 일은 불가피 하니 미리 알고 좋은 경험들 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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