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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이야기/ADHD 생활기

[도파민 메뉴] ADHD 뇌에게 건강한 자극을 주는 법

by 벨리너린 2021.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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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는 신경정상인보다 도파민이나 도파민 신경전달 물질이 낮아서, 뇌에서 그걸 보완하고자 끊임 없이 다른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다. 누구나 제대로 기능하는 삶을 살려면 도파민이 필요하다. 뇌의 도파민 레벨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아침에 일어나서 제대로 각성도 되고, 설거지나 청소같은 일도 처리할 수 있고, 한 곳에 오래동안 집중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 도파민 레벨이 낮은 ADHD인들은 이를 보완하고 보다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도파민 신경전달 물질을 높여주는 약물치료를 하거나, 아니면 의식적으로던 무의식적으로던 각자만의 대안으로 도파민을 올려주는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안이 항상 건강하진 않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지루할 때는 건강하지 못한 자극이 건강한 자극보다 훨씬 쉽게 손이 가기 마련이다. 건강하지 못한 자극의 예는, 별로 볼것도 없는데 끝없이 SNS 스크롤링 하기, 나한테 별 도움 안되는 자극적 가십 기사 찾아 읽기,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데 심심하니까 군것질 하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만나서 시간 때우기 등이 있다. 할 때도 별로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않고, 인생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쓸데 없이 자극적인 정보에 스트레스 받거나 공허함만 남을때가 많다. 쉬어도 쉰 것 같지도 않은 기분만 남을 때가 대부분이다. 

 

분명 쉰 것 같은데 계속 피곤한 나.jpg

그래서 나도 해외 유명 ADHD 유튜버 How to ADHD가 고안한 도파민 메뉴를 따라해 보았다. 영상의 요지는, 배고플 때 계획 없이 장을 보면 정크 푸드만 가득 가지고 집에 오는 것 처럼, 지루할 때 뭔가 자극 거리를 찾다 보면 건강하지 못한 자극으로만 인생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러나 미리 건강한 자극의 메뉴를 만들어 놓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 되는지 적어놓고 심심할 때 마다 끝없이 SNS만 새로고침 하는게 아니라 진짜 양질의 재미와 행복을 나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How to ADHD 가 소개한 도파민 메뉴

자, 그럼 나의 도파민 메뉴는 다음과 같다. 코로나 시대에 걸맞는 것만 추렸는데, 당연히 코로나가 끝나면 훨씬 더 다양한 도파민 메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셀프 타로 점 보기

타로는 이미지, 스토리 등으로 뇌에 건강한 자극을 준다

소요 시간: 30분 

사실 점을 그렇게 잘 믿는 편은 아니었는데, 가족이 준 타로 덱으로 심심할 때 혼자 점을 쳐보니 정말 재밌었고 의미 있는 삶의 성찰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셀프 점이니 그렇게 모든 카드를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고, 그 때 그 때 구글링 하거나 해석 책을 하나 사서 곁에 두고 봐도 좋다. 타로가 도파민 메뉴에 올라가는 이유는 알록 달록한 그림이 뇌에 즐거운 자극을 주고, 또 덱마다 디자인도 조금씩 달라서 새로움도 있다. 또한 스토리 텔링의 일종이기에 서사를 좋아하는 인간의 뇌가 몰입해서 즐기기 정말 좋은 도구이다. 마냥 즐겁게 심심풀이 하고 싶을 때는 가벼운 질문을 던지고 (저녁엔 뭐먹을까 같은 것도 좋다) 나 자신이 인정하기 힘든 부분을 좀 더 직면하고 나와의 대화를 하고플 땐 조금 더 무거운 주제를 던진다. 친구들과 가지고 놀면서 고민 상담 하기에도 정말 좋은 도구이다.

 

2. 네일 아트 하기 

알록 달록 오호라 셀프 젤네일

소요 시간: 30분-1시간

한두달에 한번 쯤 셀프 젤네일을 하는데, 예뻐서 그런 것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베를린 집에만 쳐박혀 있으면서 사실 그렇게까지 예뻐 보일 일은 없고 그냥 손을 볼 때 마다 뭔가 알록달록 있는게 재밌어서 한다. 맨날 보는 손톱이 아니라 달마다 바뀌는 새로운 것이 도파민 충족 시키기에 좋고, 하는 과정 조차 어느 정도의 창의성을 발휘해야 해서 즐겁다.  

 

3. 새로운 스타일 조합 만들기

LOOKSCOPE 앱의 랜덤 스타일 코디 기능

소요 시간: 15분 - 30분

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 이번에 캡슐 옷장을 정리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옷들을 다 LOOKSCOPE라는 앱에 올려서 누끼를 땄는데, 그러면 앱이 랜덤으로 옷을 매치해서 보여준다. 항상 내가 입던 방식으로만 코디해서 입는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던 옷들을 내가 생각치도 못한 조합으로 매치하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이 되고, 새로움 = 도파민 아닌가. 심지어 유튜브에 패션쇼 음악까지 검색해서 틀어놓고 분주한 패션쇼의 백스테이지에라도 온 것 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면 내 방이 바로 베를린 패션 위크다. 

4. 음악 디깅하기 

소요 시간: 15분-30분

원래는 디제잉 하기라고 쓰려고 했으나 디제잉이 세미 프로페셔널한 부업이 되고 난 후로는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해서 (...) 그냥 새로운 음악 자체를 찾고 듣고 즐거움을 느끼는 디깅 과정 자체를 도파민 메뉴에 올렸다. (뮤직 프로덕션 전공한 친구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자유 시간에 무슨 음악을 듣느냐'라는 주제로 토의를 했는데 교수가 '난 일 끝나면 귀가 피곤해서 더이상 아무 음악도 듣지 않는다'라고 했다고 했고 그 친구에게도 그게 곧 현실이 되었다...) 내가 항상 듣던 음악에서 약간 벗어나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도 좋고, 음악은 나를 곧바로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기분 전환 하는데도 최고다. 과학적으로 정신 건강에 곧바로 도움이 되는 취미가 2개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음악과 식물이라고 한다.

 

5. 식물 돌보기 

소요 시간: 30분-1시간 

정확히 작년 이맘 때 쯤, 락다운을 처음 겪었고 식물에 엄청나게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키웠다. 원래는 식알못었고 갖고 있던 식물들을 죄다 시들시들 죽였었는데, 이 당시에 닥치는 대로 식물을 모으고 틈만 나면 유튜브에 식물 관리 영상이란 영상은 죄다 빈지 워칭 하면서 이제 거의 준 전공쯤 된 기분이다. (내 통장 잔고에게 별로 건강한 집착은 아니었던 것 같다. ㅎ) 아무튼 당시 엄청난 양의 식물을 사 들인 덕분에 엄청난 양의 식물 엄마가 되었다. 사실 ADHD 때문에 물 주는걸 까먹을 때가 당연히 있지만 (Pliary라는 식물 물주기 관리 앱을 사용하는데 나름 도움이 된다) 신경 써서 비료를 주고, 때 되면 분갈이도 해주고, 웃자란 애들은 잘라서 물꽂이도 해주고 하면 스트레스도 가라앉고, 살아있는 대상에게 애정을 쏟으면서 정신 건강도 좋아진다. 봄이 적기라 지금이 한창 식물 취미로 재밌을 수 있는 시기이고, 겨울엔 비료를 줄 필요도 분갈이 할 필요도 별로 없어서 이 취미도 약간 동면기에 들어간다. 

 

6. 혼자 춤추기 

소요 시간: 5분 - 1시간

디제잉이 취미이자 부업이었던 만큼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 내가 좋아하는 DJ가 플레이하는 셋에 모든 것을 잊고 춤추는 것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코로나가 끝날 때 까지 그건 불가능해졌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케이팝 가수의 노래를 틀어놓고 혼자 요리하면서 춤을 추거나,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디제이가 라이브 스트리밍 할 때 알람을 맞춰놓고 큰 화면에 디제잉 영상을 틀어놓고 1시간 동안 여기가 베르크하인인 것 처럼 춤을 춘다. 춤은 특정 장르나 서브 컬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베이비 시팅 하던 아기들도 박자가 신나는 동요가 나오면 몸을 흔들고, 내 디제잉 경험 중 제일 좋았던 순간 중 하나는 베를린 수제 맥주 가게에서 디제잉 했을 때 딸과 함께 오신 할머니가 내 음악에 춤을 추던 때였다. 이것 역시 즉석 도파민 보장!

 

7. 미리 엄선해 놓은 영화 보기

소요 시간: 2시간 

미리 골라 놓지 않으면 그냥 끝없이 뭐 볼까 스크롤만 하다가 시간이 다 가고 결국 짤막한 유튜브 영상 하나 보고 끝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미리 계획해서 시간을 비워두고 작품을 선정해 두는게 좋다. 사실 ADHD가 있으면 긴 영화 하나에 집중하기 힘드니 아예 방에 불을 꺼두고 무드등을 켜놓고 따뜻한 차 한잔 만들어서 본다던가, 아니면 아예 손으로 색칠 공부 같은 것을 하면서 보면 집중해서 보기가 훨씬 쉬워진다. 영화 역시 나를 한 순간에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힘이 있고, 깊이 내가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해보도록 해주는 경우도 많아서 좋아한다. 

 

8. 덕질

소요시간: ? 

지금 우리가 케이팝이라 부르는 것이 폭발하던 2008년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 치고 덕질을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 당시엔 워낙 공부만 강조되던 분위기라 몰래 몰래 숨어서 아이팟 나노(...)에 뮤직 비디오나 팬픽을 넣어서 읽고, 금기의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나서 깨닫게 된다. 진심으로 애정을 담아 응원을 보낼 대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보낸 시간은 정말 가치있는 시간이었다고. 세상에 자기가 좋아하는게 뭔지도 모른 채 악플 따위나 쓰며 인생 낭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무언가에 열광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가. 특히 성인이 된 뒤엔 그런 가슴 뛰게 하는 존재가 얼마나 희귀한지 더욱 더 깨닫게 된다. 사실 나는 특정 아이돌 가수를 꾸준히 덕질하진 않고 (그렇지만 샤이니 무대를 보고 가슴 한번 안 설레본 사람은 없잖아요?) 나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가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민희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기획한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좋아했고, 이탈리아 북부를 배경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 속 책만 읽고 사랑만 해도 될 것 같은 콜미바이유어네임의 세계관을 좋아했고, 현실적이지만 현실에 불응할 수 있는 도시 십대 특유의 같은 스캄의 세계관을 좋아했다. 단, 한 번 시작하면 미친듯이 시간이 흐를 수 있기 때문에 그날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덕질 하는걸 추천. 


이 포스팅을 쓰면서 이 취미들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설레고 즐거워졌다. (쓰고 보니 꽤나 혼자 잘 놀잖아, 나?) 물론 리스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무궁 무진 추가해 나갈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즐거운 자극이 없어서 우울해지기도 했는데, 이렇게 방에서만도 놀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하고 나니 많이 괜찮아졌다. 요지는, 하고 있으면 진짜로 행복하고 즐거운 방법으로 뇌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놀이는 권리이다. 어린 아이에게 놀이를 금지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일 정도로. 어른들에게 놀이는 사치처럼 여겨진다. '유흥'이라는 말은 퇴폐적이고 착취적인 것으로 변질 되었다. "저 인간은 놀 궁리밖에 안한다"는 말은 폄하하는 뉘앙스까지 담겨있다. 그러나 ADHD 진단과 치유의 여정을 걸으면서, 나는 뭔가를 잘하려 하지 않고, 즐거움 외엔 어떤 목적도 없는 놀이야 말로 인간을 치유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매일 나 자신에게 한 가지 순수하게 즐거움만을 위한 놀이 시간을 보장해 주려고 한다. 

 

당신을 즐겁게 하는 놀이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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