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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라이프

[여행의 도파민] 코로나 시대에 베를린에서 산 넘고 물 건너 귀국하기

by 벨리너린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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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우리 곁에 찾아온지 벌써 1년이 지나간다. 나는 그 기간 내내 베를린에만 주욱 있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봄에는 날씨도 화창했고, 룸메이트와도 함께 살았기 때문에 베를린의 락다운이 꽤 견딜만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약없이 길어지는 취업 준비기간 속, 혼자 살기 시작했고 베를린의 회색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도 지독하게 느껴졌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온전히 혼자 있음이 내 자유 의지의 결과일 때의 이야기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12월 한달동안 내 문앞에 찾아온 우울을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려 애썼다. 아니 어쩌면 일년 내내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많이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인정하지 않는 사이 어쩌면 이미 우울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기간동안 남자친구가 요리해준 수많은 맛있는 음식에 행복했고, 그가 내 곁에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나 12월 26일,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 밖을 보면서 이제 내가 유일하게 기대하던 크리스마스마저 끝났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남은 베를린의 잿빛 겨울이 아무 것도 기대할게 없이 이겨내기엔 너무나 길다는 것도.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바로 부모님께 연락드려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코로나19 시대의 독일 살이

12월, 이제는 백신이 상용화되기 시작한다는 뉴스가 들리고 어쩌면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세계인의 2020년을 통째로 뒤흔든 코로나 한 가운데서 내 베를린에서의

berlinerinberlin.tistory.com

여행 준비 과정

 

그러나 코로나 시대의 여행의 과정은 준비 단계부터 녹록치 않았다. 일단 파리를 경유해서 한국에 가는 여정이었는데, 프랑스에서도 락다운과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짧은 경유라도 프랑스에 입국하려면 72시간 내에 받은 코로나 음성 검사 결과가 있어야하고 없으면 탑승조차 거부할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행 목적의 이동사유서도 프린트해서 가지고 가야했다. 

 

검색해보니 베를린 공항에서 해주는 코로나 검사는 검사 후 24시간내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고, 각국 공항에서 신원 증명까지 되려면 68유로를 지불해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출국 이틀전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검사를 받으러 베를린 신공항으로 갔다. 여행 목적으로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이른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신원 증명서까지 떼어주려면 여권을 가져와야한다는 말을 듣고 여권을 안가져왔던 나는 집으로 돌려보내졌고, 결국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한 30분정도 줄을 서고 검사를 받았다. 

 

여행 과정 (1) 베를린 -> 파리

 

베를린에서 파리에 가는 비행기표는 베를린에서 오후 느즈막히 출발한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경유 시간이 1시간을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이라는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은 아침 일찍 비행하는 것 밖에 없었고, 그것도 역시 나름대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또 경유시간이 너무 길어져도 다른 나라에서 바이러스 노출 시간만 괜히 더 길어질것 같아서 그냥 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웬걸. 출발 당일 베를린에 눈이 펑펑 오는것이 아닌가.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설레는 눈풍경으로 가득했지만 당일 비행을 해야하는 나로서는 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눈이 쌓일 정도로 많이 오지도 않고 눈이 빨리 녹을 만큼의 기온은 됐기 때문에 그래도 걱정없이 넉넉한 시간을 잡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남자친구가 공항으로 데려다주면서 셀카도 찍었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면서 그래도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베를린 신공항으로 가는 직행열차 FEX에서 본 눈덮인 베를린의 풍경은 참 예뻤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화물을 부치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남자친구와 공항에 앉아서 또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남자친구는 긴 여정동안 배고플까봐 내가 수화물을 부치는 동안 날 위한 간식과 음료수를 사왔고, 당분간은 못먹을 브리치즈가 들어있는 라우겐브롯트를 먹으면서 당분간은 못나눌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곧 게이트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왔고 남자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파리행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좀 많다고는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프랑스인 친구 엄마도 마주쳤다 ㅎㅎㅎ) 거의 만석이었고, 예상과는 다르게 일행이 아닌데도 바로 옆자리에 앉혀놓았다. 아무래도 대륙간 장거리 비행은 텅텅 비어서 간다지만, 오히려 유럽내 단거리 이동은 비행 수 자체를 줄이고 사람들을 좀 모아서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뿔사. 설마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눈 때문에 비행기 날개가 얼어서 이륙이 지연됐다는 것. 경유시간이 한시간 남짓 뿐이고, 파리 샤를드골 공항은 크고 복잡하고 게이트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처음엔 25분여 지연된다고 했고 나는 지금 차라리 비행기에서 내려야 하나?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승무원들에게 자기 경유 비행기를 놓치는게 아니냐고 물어봤고 (인천행 승객 외에도 경유시간이 1시간밖에 안되는 승객들이 많았다) 승무원들은 연결편이 그들을 좀 기다려줄거라고 그들을 안심시키기 바빴다. 나는 그래도 연결편 역시 에어프랑스였으니 승무원의 말을 믿고 좀 차분해져보려고 노력했다. 살수차가 와서 날개에 물을 뿌리며 얼음을 녹였고, 비행기는 결국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출발했다

 

나는 비행기의 좀 뒷편에 앉아있던지라 승무원에게 연결편이 빠듯하니 착륙하면 빨리라도 나갈 수 있도록 빈 앞쪽 좌석으로 옮겨도 되겠냐고 물어봤고, 승무원이 그러라고 해줬다. 그 과정에서 이 비행기에 나를 포함해 인천행 한국인 승객들이 4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승무원이 4명이나 되니 우리 인천행 비행기는 우리를 기다려 줄것이라고 했다. 

 

에어 프랑스에서 준 마들렌

결국 비행기는 인천행 비행기 게이트 클로징 시간이 되어서야 착륙했고, 나는 다른 한국인 승객들과 비행기를 뛰쳐나왔다. 연세가 좀 있으시고 캐리어를 끄시는 승객분들도 계셔서 짐이 적은 내가 가장 빨리 전속력으로 달려서 비행기를 잡아놓으려고 했다. (비행기가 버스도 아니고 ㅎㅎ) 그러나 최소 25분은 걸리는 파리 공항 게이트 환승 구간을 전속력으로 달려서 13분만에 도착했는데도, 게이트는 흔적도 없이 닫혀있었다. 괜히 유산소 운동만 잘 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따라오던 다른 인천행 승객분들께 우리는 비행기를 놓쳤다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터덜터덜 에어 프랑스 환승 데스크를 찾아갔고, 영어가 편하지 않으신 분들도 계셔서 내가 통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환승 데스크에는 비행기를 놓쳐서 화가 난 사람들이 꽤 있었고 어떤 프랑스인 아저씨는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직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제 좀 프랑스에 온 실감이 난다고 생각했다. 환승 데스크는 베를린에서 비행기가 지연되어서 연결편을 놓친 것은 항공사측 과실이니 바로 다음날 대한항공편으로 다시 예약해줬고, 파리 공항 호텔도 예약해주고 그날 저녁 도시락도 주고 그 다음날 공항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15유로짜리 바우처도 줬다. 뤽베송과 똑같이 생긴 에어프랑스 직원 아저씨가 일처리를 다 해주고서는 일어나서 90도로 인사하며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프랑스인 직원에게 이런 친절을 기대하지 않았어서 나도 고마웠다.

 

어차피 놓친 비행기인데 그냥 어서 푹 쉬자는 생각으로 우리는 다같이 공항 호텔로 걸어갔다. 그때 함께 만난 인천행 한국인 승객분들이 다 인상이 좋으신 분들이라 오손도손 함께 동병상련의 기분을 나누며 걸어가는것도 위안이 됐다. 통역을 담당하는게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어보셨지만 오히려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에어프랑스가 예약해준 파리 공항 호텔과 역시 에어프랑스에서 준 위생 키트

호텔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당연히 비행기 놓친 손님들을 받는 호텔이니 고급도 아니었고 따로 어메니티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화장실 역시 흡사 유스호스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 치고 여독을 풀기에는 정말 안락한 침대였다. 코로나 시국 내내 베를린에서 호캉스 한번 가보는게 소원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남이 보내준 호캉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에어프랑스에서 준 도시락

우리가 환승데스크에서 예약 변경 수속을 마치고 난 시간은 이미 공항 식당들이 다 문을 닫은 시간이었기에 에어프랑스에서 도시락을 줬다. 도시락 안에는 다시한번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카드가 담겨있었다. 도시락 내용 구성은 정말 별거 없었고 찬 음식이었지만 비행기를 놓치면서 전속력으로 달린 아드레날린이 남긴 허기를 달래기에는 정말 맛있게 느껴졌었다. 특히 저 토마토 참치 파테가 생각보다 입맞에 맞아서 비스킷에도 발라먹고 남은걸 저 타불레에도 비벼먹었따. (다음날 비행기를 같이 놓친 또래의 한국인 언니도 자기도 똑같이 먹었다고 해서 역시 한국인들 생각하는건 다 똑같다고 웃었다 ㅋㅋㅋ) 기대했던 호텔 조식은 정말로 형편 없었고 호텔 조식보다 에어프랑스에서 준 도시락이 더 맛있었다.

 

파리 (공항)에서의 하루 

 

라뒤레 마카롱

다음날, 저녁의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려면 파리에서 하루종일을 보내야했다. 시간이 정말 많았기에 파리 시내를 다녀와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코로나 상황도 그렇고, 또 시간에 맞춰서 공항까지 오는게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그냥 함께 비행기를 놓친 한국인 또래 언니와 함께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하루종일 탐방하기로 했다. 

 

우리가 처음 시도한 것은 라뒤레 마카롱이었다. 좀 많이 사서 한국에 선물용으로 가져갈까 했는데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이미 백팩이 너무 가득차고 무거워서 그냥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먹을 마카롱 3개만 구입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라뒤레 마카롱은 정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여태까지 내가 지불한 6유로 중 가장 가치있었다. (그리고 그날 결국 하루종일 공항에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코로나 시기에 여행이 주는 다양한 오감 자극이 참으로 고팠는데 그래도 파리 공항에서 새로운 자극을 주는 맛이라도 느낄 수 있는 기회라도 얻어서 감사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는 캐비어와 생굴을 파는 식당도 있고 회전초밥을 먹을 수 있는 스시집도 있어서 우리는 바우처로 맛있는 점심을 먹을 기대를 가득 안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서 들어갔는데, 웬걸! 프랑스 락다운 때문에 앉아서 먹는게 허용이 안되고 테이크아웃만 가능하기에 웬만한 맛있는 식당이 다 닫혀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프레타망제에서 연어샐러드와 하몽샌드위치를 사서 마스크를 벗고 먹어야하기에 좀 구석지고 사람이 없는 곳 바닥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나름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종일 그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잡지를 보기도 하고, 가족들과 연락하기도 하고, 또 같이 면세점에서 똑같은 예쁜 컬러 립밤을 구입하기도 했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우연히 만난 인연이었지만 이야기하다보니 우리가 공통점도 많고 베를린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다녀와서 베를린에서 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은것도 아쉬웠는데 비행기를 놓침으로 인해 또 다른 인연을 만난것도 재밌었다. 

 

여행 과정 (2) 파리 -> 인천

대한항공 탑승 대기중

파리 공항에서의 기나긴 기다림 이후,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할 때가 된 것이었다! 베를린에서부터 파리에서까지 그 고생을 하고나서 대한항공 국적기를 보니 갑자기 내가 비행기표를 사서 한국에 가는게 아니라 그 분들이 조난된 우리를 구하러 데리러 온 기분이었다. 파리에서 인천까지 가는 비행기는 역시 소문대로 텅텅 비어있었고, 한줄에 한명씩만 타서 전원 누워서 갈 수 있었다. 내 생에 가장 편안한 장거리비행 경험이었다. (나는 자고 일어나서야 사람들이 팔걸이를 올리고 누워서 잤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못누워봤다 ㅋ)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니 정말 좋은 어메니티가 들어있는 예쁜 파우치를 받았다. 칫솔, 빗, 구두주걱, 핸드크림, 바디로션, 립밤, 치약, 칫솔 등이 들어있었다. 핸드크림과 립밤 향기도 너무 좋았다. 호텔에서도 못 누려본 어메니티 호강을 대한항공 이코노미에서 뜻하지 않게 경험했다.

 

인천 공항 도착해서 검역 줄을 기다리면서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착륙했고, 이제 모든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벌써 해외입국자 픽업하는 곳에 도착하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검역을 기다리는 줄이 정~말 길었다. 롱패딩을 입고 있어서였는지 좀 더웠고 벽면에 붙은 스크린에서 끊임없이 불러주는 아기상어의 손씻기 버전을 따라 부르면서 기다렸다. 베를린에서부터 함께한 한국인 승객분들과 자가격리 끝나면 뭐하고 싶냐, 뭐 먹고 싶냐 대화도 나누고.

 

드디어 나를 검역할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또 이게 웬일... 내 체온이 37.7도가 나왔다. 원래 수족냉증에 정상체온보다 낮아서 엄청 고생하던 내 몸이 왜 하필 인천공항에서 갑자기 뜨거워지기로 결정했는지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직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열이 높으셔서 유증상자 트랙으로 가셔야한다고 했고, 이때부터 좀 멘붕이 시작됐다. 괜찮겠지? 롱패딩때문인가? 싶어서 롱패딩도 벗고 유증상자들을 모아놓은 곳에 가서 또 특별 검역 질문 차례를 기다렸다. 근데 그 곳의 검역관님들이 내 체온을 다시 재 봐도 37.5도로 나와서 결국 시설격리소로 이동되어서 새벽에 음성 검사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려야한다고 하셨다. 나는 이 뜬금없는 포인트에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졌다. 아빠가 바로 문 밖에 있는데 아빠도 못본다니 너무 너무 슬펐다. 아마 베를린에서 집을 떠난지 이틀이나 지났던 시점이라 더 피곤함이 축적되고 서러웠던것 같다. 검역관 분들이 당황하시면서 위로해주시려고 했는데 가뜩이나 상당히 지쳐있을 공무원분들께 감정노동까지 얹혀드린것 같아서 더 미안했다. (죄송해요 그냥 좀 피곤하고 서러웠어요 ㅠㅠ) 

 

결국 유증상자들을 다같이 모은 버스를 타고 시설격리소로 향했다. 대부분 외국인들이었다. 불꺼진 버스에서 방호복 입은 운전사분이 운전하시는 추운 버스를 타고 외국인들과 함께 정부 격리 시설로 옮겨지는 상황이 너무나도 팬데믹 디스토피아적 상황이었다. 나는 이 즈음엔 따뜻한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긴 이번 여행은 모든 예상을 빗겨나가는 여정이었다. 버스가 시설격리소에 도착했고, 유증상자들을 한명한명 호출해서 방에 배정해줄때까지 영하 7도의 날씨에서 건물 밖에서 밀집해서 기다렸다. 나는 그나마 한국 추위에 대비해 롱패딩이라도 입고 장갑이라도 끼고 있었는데, 유럽에서 온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른 외국인들은 다들 가을 점퍼 정도만 입고 손이 새빨개진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는 지시를 따라 윗층으로 이동했다. 윗층에 가니 방호복을 입은 다른 공무원분이 내 방에 데려다 주셨고 시설격리소와 검사 안내를 해주셨다. 건물 곳곳에는 질병관리청 표시가 붙어있었다.

 

인천공항 시설격리소 음압격리실

내가 말로만 듣던 음압격리실에 격리되다니... 생각보다 따뜻하고 아늑했지만 그래도 너무 초현실적인 상황이라는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7시간정도가 걸린다고 했고, 음성 결과가 나오면 새벽에 가족이 데리러 와야한다고 했다. 유럽 모든 국가들이 애초에 코로나에 이렇게 대응했다면 지금쯤 코로나는 종식됐겠지...라고 생각했다. 격리시설에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기에 나는 미리 아이패드에 다운받아둔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봤다. 양성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1초정도 해봤으나 그러면 진짜 앞으로 2주간은 가족들은 코빼기도 못볼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그런 시나리오를 생각할 체력조차 없어서 그냥 아무 생각도 안하고 시간이 어서 가기만을 바랐다.

 

비행기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많이 먹지 않았고, 시차적응을 한다고 잠도 제대로 안잤는데, 새벽까지 깨어있어야 할줄은 꿈도 못꿨다. 게다가 비행기에서조차 제대로 먹지 않아 배는 너무 고팠다. 검사 후에 바로 저녁을 준다고 했는데, 검사 후 2-3시간이 지나도 밥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무원분들이 바쁠까봐 참다가 결국 방에 있는 유선전화로 "저 아직 밥을 못받았는데요..."라고 했는데 공무원분이 지금은 저녁시간이 아니라 밥을 줄 수 없다고 하셨다. 순간 다시 눈물이 주룩주룩 나왔다. 확인해보시겠다고 하고 끊으셨는데 주책맞게 또 밥 못준다는 말에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 (진짜 피곤했나보다.) 2분도 채 되지 않아 다른 공무원분이 전화주셔서 갑자기 입소 인원이 증가하는 바람에 바빠서 잊으셨다고, 지금 바로 주신다고 했다. 나도 배고팠지만 공무원분들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얼마나 이렇게 바쁘게 지내셨을까 하는 생각에 짜증도 나지 않았다.

시설 격리소에서 준 도시락

격리소에서 준 도시락은 정말 맛있었다. 사실 하도 고생해서 처음 먹은 한국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간장치킨과 깻잎, 그리고 김치와 흰 쌀밥... 감동이었다. 나 한명의 유증상 해외입국자에게 들어간 공적 자원만 벌써 얼마인가... 생각해봤다. 급식 시절 이후로 나라에서 주는 밥 처음 먹어봤다.

 

꾸벅꾸벅 졸면서 새벽이 되었고, 유선전화기로 전화 한통이 왔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오빠는 이미 나를 데리러 검사 결과가 나올 시간에 맞춰서 인천공항 터미널 1으로 나와있다고 했다. 결국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른 음성 결과를 받은 사람들과 이동했다. 격리소로 함께 이동한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지만 또 보이지 않는 얼굴도 있었다. 갈땐 같이 갔지만 올땐 같이 오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 사람들도 검사 결과가 지연되었을 뿐 건강하게 돌아왔기를 바래본다. 버스 타고 가는 길에 갑자기 또 결국 오늘 못본 아빠 생각이 나서 또 울었다. (진짜 진짜 피곤했나보다.)

 

오빠가 인천공항에 픽업을 왔고, 결국 나는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도착해서도 바로 내가 자가격리하는 방에 들어가야 했기에 엄마랑도 간단한 인사만 하고 서로 마스크 끼고 있었기에 얼굴도 제대로 못봤다. 

 

새벽 네시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

결국 시차적응의 꿈은 첫날부터 깨지고 새벽 4시에 엄마가 차려준 밥을 혼자 먹었다. 그래도 온돌 장판은 따뜻했고 엄마가 차려준 밥은 너무 따뜻했다. 사실 엄마 밥 먹으려고 귀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밥을 먹고, 간단히 샤워한뒤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그래도, 난 이제 집에 왔다


정말 고생스럽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코로나 시대에 결핍되어있었던 불확실성의 아드레날린으로 가득한 여행이었다. 하루하루 벗어날 수 없는 일상, 베를린 아파트에만 갇혀있다가 고생스럽더라도 예측불가한 모험이라도 하니 도파민도 넘쳤던 것 같다. 이 모든게 새로운 경험들이었으니. 팬데믹이 종식되고 나서도 다시 경험하기 힘든 일들이지 않을까. (그러길 바란다!) 또 험난한 과정속에서 새로운 인연도 만들었다. 베를린에 언제 돌아갈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일단, 충분히 푹 쉬면서 가족과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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